2기 김재상 |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Interview
Q.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그것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사실 그렇게 드라마틱한 계기는 없었던 거 같아요. 이전에 나율 님의 인터뷰를 보니까 “어렸을때 꿈이 대통령인 사람이 제일 신기했다”는 내용이 나오던데 사실 제가 그런 꿈을 가진 친구 중에 한명이었어요. 진짜 어린 나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TV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장면을 보았는데, 대북 식량지원 자료화면을 지켜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여러 사람을 살리는 일’, ‘좋은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나봐요. 나도 나중에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키웠었어요. 보통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꿈을 직업으로 구체화시키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이라는 꿈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인데, 저는 매 학년 초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정치’ 영역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꿋꿋이 적어왔어요. 그때도 지금도 제게 ‘진로’라는 건 구체적인 직업보다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살 것인가’에 조금 더 집중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치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학창시절, 대학생 시기를 보내오면서 그때그때 학교나 지역사회 같이 제가 속해있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매번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지만 크고작은 보람들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니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지더라고요. 삼십대, 사십대 정도에는 국회에서 법과 제도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시절 당시 변호사로서 직업 특강을 와 인연을 맺었던 박상혁 의원의 제안으로 제가 살아오던 김포에서 선거를 함께 치르고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국회에 비서관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한번도 바뀌지 않은 꿈이었고, 언젠가는 가고자 했던 길이었기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어요. 아직은 우리 사회가 큰 계기가 있어 정치에 입문하게 된 인물에 기대감을 갖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해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어요. 당장은 제가 정치를 한다기에는 누군가의 보좌진으로 정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제가 그리는 사회상을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선택받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Q. 2017년 ‘촛불 혁명’이나 2025년 ‘빛의 혁명’을 가까이에서 경험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이전 질문에서 어린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고 답했던 사람인 것 치고 제가 보좌진으로 현실 정치에 처음 발을 들인 뒤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사실 ‘무력감’ 이었어요.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했고, 당장 많은 것을 바꾸고 싶은 욕심은 컸는데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더라고요. 법과 제도라는 게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게 능사도 아니잖아요. 실무를 하는 보좌진으로서 국회라는 곳이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면서도 시민들의 요구만큼, 기대만큼 매번 바로 무언가를 충분히 해낼 수 없다보니 조금 지치기도 하더라고요. 2017년에는 제가 군대에 가있던 시기였지만 당시 촛불혁명의 결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2020년 총선을 통해 저도 국회에 비서관으로 들어오게 됐죠. 군인 신분이었던 탓에 제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있지는 못했지만 그 시기를 거쳐온 한 사람으로서 저도 이제는 정말 새로운 대한민국이 펼쳐질 것만 같은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 우리가 기울여온 노력을 모두 박하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기대만큼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어요. 특히 제가 국회에 들어온 이후 발표했던 ‘임대차 3법’ 때문에 항의 전화도 엄청 받았거든요. 욕하고 화내시는 분들보다도 이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으로 난처한 상황에 놓여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물어오는 분들을 응대하면서는 더 마음이 어렵고 무거웠어요. 시간이 흘러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이른바 ‘빛의 혁명’ 현장에는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또 국회 비서관으로 함께 있었어요. 작년 말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을 때는 보좌진으로서 국회 본회의장 앞을 지켰고, 겨울 내 이어진 집회에서는 <정치학교 반전>의 동료들과 함께 꾸린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 깃발을 들고 광장을 지켰어요. 저는 추운 겨울 내내 아스팔트 위를 달군 동료들과 시민들의 진심이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생각해요.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파면 선고가 한 줄 한 줄 읽혀 내려갈 때는 그 얼굴들이 스쳐지나가 울컥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지난 겨울부터 올봄까지 우리가 고생해 이룩한 이 성과가 세상을 상상처럼 대번에 바꾸어내진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촛불 혁명’의 경험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거예요.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또 묵묵히 부딪쳐 가야겠죠.
Q. 비서관의 신분으로 현실정치를 경험하고 또 관찰하신건데 지금 청년 정치의 실상 혹은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A. 제가 기대했던 청년 정치는 기존의 정치적 문법에 길들여지지 않고 소속 정당의 안팎에서 소신껏 의견을 개진하는 그런 역동성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청년 정치는 옛 ‘소장파’ 정치인들보다 그런 역동성은 부족한 거 같아요. 청년 정치인들이 늘어나며 국회에서 우리사회의 주요 논의 과정에 당사자로서 청년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이죠. 하지만 그들이 발탁되는 과정이라는 게,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커지면서 청년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정치권이 청년세대에 구애하는 방식의 결과로 청년 정치인들이 늘어나거라고 생각해요. 꼭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그렇게 데뷔한 청년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는 소신보다는 정치적 진로를 일종의 커리어패스 고민하듯 기획하고 단계를 밟아가는 ’직업형 국회의원’, ‘직업형 정치인’이 되어가기 쉬운 것 같아요. 아직 출마를 하지 않았거나 공직을 맡아본 경험이 없는 청년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청년 정치가 이미지만 소진되어버리는 것 같다는 우려, 이렇게 해서는 국회의원이 되거나 다른 공직을 맡아서도 소신껏 정치를 하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를 한 켠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 당장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의 청년정치로는 대한민국 정치에 파란을 일으키기는 어렵죠. 저는 청년정치가 당사자로서 청년 세대의 의제만 다룬다거나 청년 시기에 정치에 입문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관습처럼 굳어져 우리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기는 커녕, 따라가기 급급했던 대한민국의 정치 문법에 이견을 드러내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국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해요. 이런 저의 문제의식을 함께 나눌 동료들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특정 정당에서 운영하는 정치학교 프로그램이 아닌 <정치학교 반전>에 지원하게 된 것도 있어요.
Q. 그렇게 들어오게 된 ‘반전’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수업이 될 수도 있고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국회에서 누군가의 보좌진으로서 실무를 하다보니 어떤 현안에 대해서 내 생각을 드러내보이는 일이 이전보다 적어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꼭 직업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하나를 알아도 열을 아는 것처럼 자신있게 이야기하고는 했는데 점점 열을 알아도 내가 모르는 아흔가지가 있다는 생각에 제 주장을 드러내보이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토론 끝에 대판 깨지더라도 ‘내 생각’을 주장하고 반대토론을 듣는 상황에 스스로를 더 노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정치학교 반전>은 그런 갈증을 채우기 좋았던 것 같아요. 단조로운 개인의 삶의 이야기에서 유승찬 실장님의 컨설팅을 통해 ‘정치적 말하기’로 거듭난 3분 스피치라던지, 수업 시간부터 때로는 수업 이후 새벽 뒷풀이까지 이어지는 동료들과의 토론에서 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또 다른 관점의 이야기도 많이 들으며 공부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네요.
Q. 그러면 수업 중에는 어떤 시간이 가장 좋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김성식 운영위원장님이 ‘공화주의’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본인께서 정치를 해오며 고민하셨던 질문들을 저희에게도 던지고 저희의 답을 듣는 것으로 수업을 진행하셨어요. 저는 ‘“정치, 그만 싸워라”, 이 주장은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틀렸는가. 이와 관련해 민주 공화국에서는 어떤 원리가 작동해야 바람직한가. 동시에 국회의 문제해결능력은 어떻게 제고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답을 준비했는데 그동안 국회에서 일하며 보고 고민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단순히 싸워서는 안된다, 협치가 중요하다는 식의 교과서적이고 일방적인 수업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싸워야 국민들에게 이로울 수 있는지를 저 스스로 고민해보고 동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게 해주셨던 게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Q. 이후에 반전 프로그램은 어떻게 발전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A. 이제는 조금 더 대중 속에서 <반전>이 추구하는 바를 드러내었으면 좋겠어요. 이제까지는 한 기수에 길게는 6개월에 걸쳐서 여러 주제의 ‘강의’를 이어 진행했다면,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가 다루어야 할 의제 중에 <반전>이 주목하는 의제를 추려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몇 차례 진행하면 어떨까 싶어요. <반전>의 관점, <반전>이 해당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반전>이 추구하는 방향을 선보이는 거죠. 대중들에게 <반전>이 초당적으로까지 청년 정치인들과 호흡을 맞추며 추구했던 공화주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우리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달라 설득하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Q. 앞으로 어떤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싶으세요? 이 질문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A. 저는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라면 본인이 그리는 우리 사회의 이상향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선택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중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민감하게 살피고 캐치하는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내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와 같이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데에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내가 설득 당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철학, 나의 소신, 내가 꿈꾸는 세상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