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Interview
Q. 반전에 들어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실 현실 정치 경험은 없어요. 하지만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유학 생활 시절,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주변 친구와 교민 그리고 졸업생들 모아서 시국선언도 하고 그랬어요. 기본적으로는 제 전공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인 거죠. 친분 있는 운영위원의 소개로 반전을 알게 되었고, 정말 진지하게 정치의 길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는 생각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Q. 아까 미국에서 사회학 공부를 하셨다고 했는데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A. 제 전공은 조직 사회학 쪽이에요.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문이에요. 조직 심리학이 개개인의 마음을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면 조직 사회학은 구성원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보죠. 저는 지금도 노동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모두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Q. 반전에 오신 후에 첫인상이 어떠셨어요?
A. 우선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생 구성이 굉장히 다양했다는 것이었어요. 그 지점이 되게 흥미로웠어요. 왜냐하면 다양한 시각을 좀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사실 사람이 나이를 먹다 보면 자꾸 생각이 굳어지는 측면이 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걸 흔들어보는 경험이 되었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커리큘럼은 어떠셨어요?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수업을 하나만 꼽아주신다면?
A. 전반적으로 수업이 다 좋았고요. 아무래도 저는 공부하는 분야가 정해져 있다 보니까 제 분야 이외에 다른 분야를 일일이 챙겨보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반전의 커리큘럼은 제가 앞으로 공부해야 하는 분야에 대한 단초들을 쭉 깔아주었던 것 같아요. 여행 가기 전에 지도와 나침반을 지급 받은 느낌이라고해야 할까요? 물론 탐험 자체는 제가 해야겠지만 든든한 도구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수업 중에는 저는 박상훈 박사님의 ‘정치가의 신념과 책임의 균형’ 수업이 좋았어요. 정치의 본질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오해나 편견 같은 것들이 많이 깨지는 경험을 했고 수업 이후 보는 시각도 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이성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 그런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기술 관료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회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지금의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요즘 노동연구를 하면서도 많이 느끼는 건데, 우리가 불굴의 정치인이나 거대 기업의 창업자를 신격화하면서 마치 그들의 비전이 지금의 세상을 모두 만든 것처럼 그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나라가 매일 매일 굴러가는 이유가 그래도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오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담보로 자기들끼리 우스꽝스러운 서커스 같은 권력투쟁에만 매몰되는 모습을 보면 진짜 답답함이 밀려오는 거죠. 그들의 행태에 거버넌스가 망가지고 있고 그 손해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고 있는데 본인들은 자의식 과잉에 빠져서 마치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운영하는 주역인 것처럼 행동을 하니까요. 역설적으로 한편으로는 ‘착각하지 마라. 아무리 당신들이 엉터리로 떠들고 다녀도 이 나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망가지지는 않을 거다.’와 같은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Q. 말씀하신 관점에서 보면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최근 사회적으로 점점 더 경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저도 굉장히 공감하는 지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근 10년 사이에 노동의 개념이나 가치가 많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정량적인 데이터나 분석이 아직 있는 것은 아닌데요. 사회 구성원들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자본 소득이나 금융 소득의 중요성이 노동소득의 그것을 앞지르는 현상이 일어난지 꽤 오래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일의 가치나 인간에 대한 예의도 동시에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부모님 같은 경우는 가난때문에 힘들게 학창 시절 보내고 직장에 가서도 일하면서 야간대학도 함께 다니셨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때는 지금과 달리 시집 한 권 들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책 한 권 들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그런 낭만이 있었다고요. 소시민이더라도 함께 공동체를 살아간다는 그런 마음을 향유했던 거죠. 지금은 확실히 그런게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노동 소득에서 빨리 벗어나야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하는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정말 많아졌어요. 회사에서 돈 벌어서 코인이나 부동산에 넣어 일확천금을 얻은 후에 회사 그만두고 재테크만 하는 그런 삶이 전형적인 성공한 삶으로 회자되니까요.
Q. 지금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함의가 있는 것 같아요. 직업의 윤리나 귄위 그리고 가치도 함께 잠식되고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A. 요즘 확산하는 플랫폼 노동 그리고 미세 노동 모두 직업적 소명을 베일 속에 감추는 형태예요. 노동자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큰 그림을알지 못하게 하죠. 직업 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돈을 버는 수단에만 머무니 노동조합 내에서도 세대에 따라 갈등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야간 근무 같은 경우는 분명히 건강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거든요. 실제로 야간 근무 자체를 발암 물질로 규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이것을 장기적인 근무 환경의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건강은 두 번째이고 그냥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렇게 노동조합 안에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결국 사측이 정한 방향으로 정리가 되는 거죠. 겉으로 볼 때는 제도의 문제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다층적인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Q. 앞으로 반전에도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된 커리큘럼이 더 늘어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A. 저는 현재 반전의 커리큘럼이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입체성을 더 줄 수 있으면 좀 더 완성도 높은 커리큘럼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출발점이 현실이라면 더더욱 수업의 효과가 높아질 것 같아요. 지금을 알아야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조금 더 하드보일드한 수업들이 늘어나도 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수업이나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을강사로 초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의 반전은 조금 학구적이고 도시적이거든요. 그 느낌도 좋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는 우선 다양한 현실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그릇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