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웅 |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
Interview
Q. 주거 문제에 대한 사회 운동을 시작으로 이제는 정치로 그 영역을 확장하셨는데 그 과정이 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회운동을 한 분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은 정치 전체 생태계를 고려할 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회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사회 운동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해요. 그 신뢰라는 것이 조정 자체를 아주 탁월하게 잘해서 얻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얼마나 그 문제에 대해서 진정성을 보이느냐가 그 신뢰의 키가 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사회 운동을 한 사람들의 장점은 바로 그 진정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정치 영역으로 확장될 때 실질적인 방법론과 연결되어 문제해결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사회 운동은 분야가 딱 정해진 스페셜리스트의 영역이잖아요. 그런데 정치는 제너럴리스트에게 좀 더 잘 어울리는 영역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정치 자체는 제너럴리스트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인 부분이 많기는 한 것 같아요. 하나의 의제가 올라오면 사회 전반적인 관점에서 전체 구성원을 조율하면서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사회화 하는 과정이 정치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한 가지 있어요. 제너럴리스트는 올라온 의제를 잘 처리할 수 있지만 의제로 올라오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대처할 수가 없어요. 지금 사회는 의제로 올라오는 문제보다 의제로 올라오지 않는 문제가더 심각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회 운동과 정치 영역이 어느 정도 협업 아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했었는데 지금은 사회 격차가 벌어지고 복잡도도 높아지면서 많은 의제들이 아예 올라오지 못하고 수면 아래서 더더욱 악화되는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전세 사기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제오래전부터 신호가 있었는데 그것이 의제가 되지 못해서 결국 이렇게 터져버린 것이거든요. 저는 이런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전문성 있는 사회 운동가들이 정치권에 진출해서 이런 의제들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회 운동가가 정치로 그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무조건 선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Q. 해커톤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나는데요. 시대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나 역시 거기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슬프다는 말씀을하셨어요.
A. 사실 그때는 이해관계자나 조정자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균형이 깨져버린 것에 대해 깊은 절망 속에서 이야기를 한 것인데요. 우리가 함께 모여 살면서 기본적으로 가지는 공감대가 있잖아요. 그게 엄청 대단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 엉엉 울고 있으면 왜 우느냐고 울어보고 옆에 휴지가 있으면 갖다주고 하는 기본적인 반응이 굉장히 유난한 것들이 되어버릴 정도로 우리 공동체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이야기였어요. 우리가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죽음이나 사회적 참사까지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그런 정치를 하게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거죠.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조차 외면하는 상황이 그것을 증진해야 할 정치라는 영역에서 계속 반복되니깐 일종의 무기력감 같은 것이 느껴지게 되는 것 같아요.
Q. 그런 정치적 상황 안에서 반전에 들어오시게 된 것인데. 지원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A.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좀 부끄럽기는 한데 저는 처음에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서 여기에 들어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인이자 생활인으로 삶을 살다 보면 정말 진득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공부할 시간을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거든요. 반전을 명분 삼아서 한번 그 시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가 초당적인 조직이잖아요. 운영위원도 수강생도 정치적으로 입장에 다른 분들이 함께 많이 모여있는데 시간이 지나고 동료들과 계속 소통을 하면서 제가 거의 포기에 가깝게 생각했던 그 상식이 복원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이라는 게 없는게 아니구나.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그 공통의 원칙이라는게 아직 존재하는구나. 그런 희망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고 저는 그게 정말 가장 좋았어요.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지금은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그런데 그런 관계가 기존 정치 집단 안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게 쉽지 않은 건가요?
A. 정당 안의 정치 활동이라고 하는 게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나는 우리가 세상을 더 낫게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가는 활동이에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실행하는 당사자를 선정하는 일종의 권력투쟁이죠. 그런데 지금의 정당 문화는 전자는 형편없이 줄어들고 거의 후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사실 상식적으로 건강한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방법론을 찾는 것이 먼저고 그다음이 권력투쟁이 되어야 하잖아요. 우선 동료라는 신뢰가 먼저고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되어 있는 상태예요. 방법론을 함께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다고 해도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보다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정무적인 전략과 전술을 위한 모임이 더 많은 상태예요.
Q. 기존 정당에서는 반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A. 제가 반전에 처음 지원하려고 했을때 주변의 몇몇 분들에게 공유를 했어요. 제 딴에는 같이 들어가서 공부 좀 해보자는 의도였는데 그분들이 저를 말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거기에 들어가면 외부에서 겉도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고 제3지대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였어요. 일종의 진영화된 사고인데 아무래도 아직은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이건 반전의 미래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그런 경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학교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으로의 반전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의견 부탁드릴게요.
A.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서 존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있어요. 자체 세력화나 현실 정치에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론을 먼저 찾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로써 제대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다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저는 잘못된 접근이라고 보고 있어요. 진영을 넘나드는 정치 교육 프로그램으로써 반전의 매력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기 과정을 거치면서 함께 한 동료들과의 깊은 신뢰가 생기는 경험을 했어요.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반면교사가 많이 되었어요. 앞으로 2기, 3기가 계속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 같아요. 저는 반전이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국가가, 정치가, 정당이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의 장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잊혀진 정치의 복원이 시작되는 그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