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양창석_지금 우리에게 독일 통일의 교훈은 무엇인가?

양창석 | 전 통일부 남북회담 본부장


Preview  

한때 한국에서는 독일 통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아직까지 이 독일 통일의 전 과정을 풍부하게 해석한 단행본은 양창석 본부장의 책이 유일하다. 도대체 그는 왜 문제를 깊게 포괄적으로 들여다보는 풍토가 빈약한 한국에서 이런 걸출한 작업이 가능했던 걸까? 그를 인터뷰하러 가는 내내 나를 휘감은 호기심이었다. 그를 만나고 나니 내 질문의 답을 찾은 것 같다. 희망컨대 수강생들이 그와의 만남을 통해 단지 독일 통일의 교훈을 넘어 담대하면서도 세밀한 통찰력 있는 리더는 무엇인가에 대해 큰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 오늘날 대전환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긴급한 상황에서 글로벌 시야를 다룰 그의 다음 책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우선 이 책을 쓰게 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독일 통일의 과정이 이렇게 심도 있게 기록된 책을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양창석 |. 제가 사실 독일에 92년 4월부터 95년 9월까지는 3년 반 동안 있었는데 그때가 독일 통일선언 후에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그 과정에 있었어요. 그래서 자료를 많이 수집할 수 있었고 제 박사 학위 논문에 그것을 주제로 잡은 것이죠. 그런데 논문을 쓸 때부터 나는 이것을 나중에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우리도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대중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게 고생해서 책을 내놓고 보니 한국에서 독일 통일에 관한 책,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A부터 Z까지 이야기하는 책의 유일한 저자가 되었더라고요.

 

송주환 | 브란덴부르크 비망록은 2011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2020년에 개정판을 발행하셨어요. 특별한 연유가 있었을까요?

 

양창석 |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의 차이는 크게 없었어요. 다만 그때가 독일이 통일된 지 30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다시 한번 이 이슈를 환기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북한에서 독일 통일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들은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었거든요. 당시 정부는 북한의 심기를 어느 정도 받아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소극적으로 이 이슈를 다루었죠.

 

안병진 | 어떻게 보면 독일의 통일은 콜 총리나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의 리더십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잖아요. 한국에서 선출직을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독일의 통일 과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양창석 | 제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나라 외교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저는 통일 외교에 관심이 많고 그 분야는 외교부의 영역이 될 수도 있고 통일부의 영역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정권에 따라 사람들과 정책이 다 바뀌기 때문에 연속성이 있기가 힘들어요. 꾸준하게 어떤 정책과 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인재가 길러지지 않는 거죠. 그리고 리더십이라는 것은 사실 인물에서 발현이 되는 것이거든요. 요즘 국제 정세를 봐도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이 정책에 투영된단 말이죠. 선출직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이 두 가지를 염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신만의 아젠다를 꾸준하게 발전시켜야 하고요. 인물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에도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외교는 협업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송주환 |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게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리더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점이에요. 미국이나 소련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심지어 동독까지도 콜 총리에 대해서는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그게 통일의 과정 중에 있을법한 불안 요소를 상쇄시켜 주는 역할을했다는 점이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리더의 역할이 이렇게까지 확장될 수 있구나를 느낀 사례였고요. 두 번째는 통일이라는 게 같은 민족끼리함께 한다는 가치적인 부분도 있지만 실질적인 이익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해지잖아요. 그런데 독일의 통일 계획을 보면 10단계를 이것을 세분화하여서이와 같은 주민들과 엘리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하는 그 노력들이 보이거든요. 막상 그렇게 진행이 안 되더라도 이런 과정들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봤다는 것이 서독과 동독 시민들에게 상당한 안정감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양창석 | 사실 그 질문만 제대로 이야기하려고 하면 수업 시간 내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일의 정치 제도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성숙해 있는 것이죠. 어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권과 관계없이 제도로써 운영될 수 있게 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인물로만 이야기를 한다면 독일의 콜, 미국의 부시, 소련의 고르바초프 이 세 명이 상위에서 독일 통일을 추진을 한 것이고 하위에서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동독 국민들이 그것을 실현하는 에너지 역할을 한 것이죠.

 

안병진 | 사실 최근 한국을 둘러싼 상황이야말로 너무나 풀어나가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 4강과의 관계가 중요하잖아요. 독일의 경우를 봐도 주변국과의 신뢰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우리는 ‘동북아균형자론’이나 ‘안미경중’ 같은 단어로 우리의 곤혹스러움을 표현하고는 했잖아요. 본부장님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송주환 | 저도 이 질문에 추가로 제 의견을 덧붙이고 싶은데요. 저는 우리가 세계 속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명확한 스탠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계 10위 권의 경제대국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남의 의견을 묻고 그걸 기준으로 우리 의견을 정한 역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그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양창석 |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주변국을 설득하려면 우선 우리의 입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겠는데 너희 의견은 어때?” 이렇게 나오면 아무 생각이 없거나 속에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잖아요. 이것 역시 우리 외교의 취약점입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저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독일이 통일을 이뤘던 가장 근본적인 힘은 바로 독일과 미국의 동맹이었어요.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했지만 근본적인 것은 그것입니다. 저는 우리도 지금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우리를 깔보고 무시하게 되는 상황은 한미동맹이 약할 때지 강할 때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보통 거꾸로 많이 생각을 하는데 국제 관계에서는 여전히 동맹이 파워풀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했듯이 미국 역시 한국의 입장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때로는 답답해합니다. 제가 4자회담에도 직접 참석을 했거든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미국은 한국이 자신보다 약한 국가더라도 그들만의 입장을 가지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주장하고 설득을 하면 수용을 해주려 하는 나라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 오히려 이렇게 접근을 못하고 미국에게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미국도 그걸 좋아하지 않아요. 대표적으로 2018년과 2019년에 북핵 문제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을 때 미국 사람들이 가장 답답해 했던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느냐? 로드맵이 있느냐? 현재의 입장은 무엇이냐? 이런 부분을 궁금해했는데 우리는 ‘평화와 번영’ 같은 캐치프레이즈나 ‘종전선언문’ 같은 결과물에 좀 집착을 했던 것이 문제를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안병진 |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먼 거죠. 결국에 ‘무능’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네요. 그런 훈련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본부장님께서 현장에서경험한 수많은 통찰들은 우리 수강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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