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강. 윤영관_우리는 과연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윤영관 | 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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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그런데 매체에 원고를 보내고 나면 항상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과연 나는 독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거나 혹은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는가 하는 자문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 실린 한 칼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존경해 온 윤영관 전 장관이 한미일 협력이라는 불편한 이슈를 정면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반도 주변 정세가 커튼 뒤에서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기존 자신들의 관성적 이론에 안주하거나 혹은 적당한 처세에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이야말로 공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함께 대한민국이 새로이 개척해 나가야 할 길에 대한 외교의 신지도를 만들어야 할 때인데 말이다. 그와 반전에서의 만남이 무척 기다려진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선생님은 외교부 장관으로 현장에도 계셨고 학자로도 계셨고. 그리고 싱크탱크에 참여도 많이 하셨잖아요. 선출직 청년 정치인에게 강연하실 때 가장 집중하시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윤영관 | 첫째로 주인 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지금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임을 우선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은 즉 우리의 관점과 입장 그리고 이익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뜻이에요. 가끔 보면 그것을 외면한 채 국제적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 역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의견이겠지만 한국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는 아닌 거죠. 그리고 제 두 번째 화두는 갭에 관한 것이에요.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 정도이지만 한국인들의 의식은 잠재적으로는 여전히 19세기적인 사고에 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새우가 아니에요. 고래까지는 안되더라도 돌고래는 분명히 됩니다. 이제 우리 경제력에 걸맞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 문제가 아직도 큰 과제라고 봅니다.

 

송주환 | 저도 관련해서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외교의 시대』 서문에 말씀하신 내용이 나와있잖아요. 우리는 고래와 새우 사이에 명민한 돌고래가 되어야한다. 그런데 외교는 보통 엘리트의 영역으로 여겨지잖아요. 교수님께서는 지금의 이 상황이 엘리트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세요? 아니면 국가와 시민의 전반적인 인식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하세요?

 

윤영관 | 저는 후자에 더 문제가 있고 그중 중요한 이유가 바로 우리나라의 정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반전은 선출직 정치인을 길러내는 교육 프로그램이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의 우리나라 외교는 전반적으로 너무 정치화가 되어버렸어요. 진보와 보수가 서로 바꿔가면서 정권을 잡고 있는데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면서 그 행동 패턴이나 의식 구조는 닮아가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안병진 | 적대적 공존인 거죠.

 

윤영관 | 네. 그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사실 국제 정치라는 것이 나름대로 돌아가는 권력의 다이내믹이 있고 그 안에 법칙성도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외교적 관점에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만 바라보고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만의 희망을 담아 정책을 집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전인수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국제 정치라는 영역이 그런 것들을 받아주는 곳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당황해서 수습하기에 바쁜 그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안병진 | 관련해서 최근에 선생님께서 한미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쓰신 칼럼을 읽고 제가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께서는 합리적인 분이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고는 추측했지만 실제로 용기 있게 칼럼으로 화두를 던지실 줄은 몰랐거든요. 선생님도 지금의 상황에 강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영관 | 그렇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 좀 부담되기는 하죠. 특히 외교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렇거든요. 저도 심리적으로 부담을 좀 느꼈고 쓰기 전에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쭉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우선 그렇게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2018년 이후 세상이 확 달라졌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경제전쟁에 이어 무역전쟁을 시작했고 외교, 군사, 경제, 기술, 이념 등의 여러 차원에서의 대결 구도가 심화되면서 한국에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오게 되었고요. 예전에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입장을 우리가 취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안병진 | 그런데 그것을 자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윤영관 | 네 그렇죠. 이제 양 국가에서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쪽을 선택하라고 하는 상황적인 압박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거든요. 우리에게는 매우 불편한 상황인 거죠. 여기에 우크라이나 침공사태가 터졌잖아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걱정과 긴장도가 상당히 높아졌어요. 한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자유주의에 기반한 국제 질서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겁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주도한 그 질서 체계 안에서한국이 성장한 것이거든요. 그렇게 보면 지금의 국제 질서 체계의 위기는 한국의 위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냉정한 현실 인식이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원래 산소라는 것은 있을 때는 존재의 의미를 알기 힘들거든요. 우리는 거기에 북한 문제도 함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걱정하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요. 칼럼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쓰게 된 것입니다.

 

송주환 | 제가 교수님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교수님이 지난 10년 동안 경고했던 일들이 거의 모두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것도 그 예상보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죠. 금융위기, 브렉시트, 트럼프 현상,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등 해서 말이죠.

 

윤영관 | 맞아요. 저도 현실을 보면서 참 암담함을 느낄 때가 많은데요. 좀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저는 우리가 1930년대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요즘 많이 합니다. 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이후 이 세상에 가치가 상실되는 것 같은 현상들이 군데 군데에서 나오고 있어요. 민주주의 별거 없고 동맹 별거 없고 가치가 밥 먹여주냐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아주 쉽게 나오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라는 게 정말 취약한 것이고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고 역사라는 것이 일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여러 가지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2024년 미국 대선이 아주 중요한 분기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주환 | 역사적 큰 사건 앞에는 언제나 전조 현상이 있잖아요. 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 이유를 신나치의 발현으로 들었을 때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윤영관 | 지금의 세계는 회복탄력성이 어느 정도인지가 정말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안 좋은 일들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성찰을 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가 결국 지금 세계의 존속하고도 연결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안병진 | 회복탄력성은 저희 반전하고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인데요. 오늘 말씀하신 문제의식들을 수업 시간에 잘 전달해 주시면 수강생들도 이 수업을 계기로 각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리고 수업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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