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강. 이승윤_세대와 계급은 어떻게 결합하는가?
이승윤 |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Preview
몇 년 전 이승윤 교수의 강연을 듣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반전에 다시 모시려고 부탁을 드렸다. 이 교수를 만나면 과거 한국 사회 전반의 작동방식을 총체적으로 해명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 우리는 다시 큰 시야와 미시적 섬세함을 가지고 계급, 세대, 젠더가 어떻게 새로이 작동하는지를 논하는 21세기형 사회 구성체론이 필요하다. 왜 청년이 대전환의 전위일 수밖에 없는 것을 분명히 해명하는 실천적 이해가 필요하다. 젊은 스타 소장 학자인 이 교수야말로 이 뉴 노멀의 작업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공적 지식인이다. 앞으로 반전의 청년들이 이 교수님과의 유쾌한 만남과 즐거운 우정을 통해 함께 공통의 개념적 무기와 정책 아젠다를 날카롭게 벼려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교수님께서 복지나 지역 그리고 청년 문제에 대해 학자로서 관심을 가지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이승윤 |. 저는 원래 노동 시장과 노동자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최근 7-8년 동안 한국에서 일의 형태가 변하는것을 보고 이 부분에 좀 더 집중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 그동안 연구한 것을 묶어서 책을 낼 예정인데 그 기본 컨셉이 바로 액화 노동(Melting Labor)입니다.
안병진 | 액화 노동? 아주 멋진 개념이네요.
이승윤 | 그동안의 노동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표준적 고용 관계 안에서 만들어진 다소 정형화된 노동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복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화가 진행되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변경되면서 기존의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디지털화까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노동이 액화 수준까지 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복지제도는 그 전 사회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복지제도의 현재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화의 최전선에 청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역은 그 변화에서 소외되었다는 것, 이 둘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병진 | 그런데 노동이 액화되는 현상이 글로벌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세요? 아니면 한국에서 좀 더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보세요?
이승윤 |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지역 격차와 연결된다는 점, 대학 진학까지의 높은 사교육 비용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에게 좀 더 혹독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직업을 얻기까지 사적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보상 임금 수준도 함께 올라가게 되거든요. 그러면 지역은 더 경쟁력을 가지기 힘든 거죠. 일종의 악순환인데 이 악순환 안에 제도까지 맞물려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플랫폼 노동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의 비용을 외주로 넘깁니다. 교육은 튜토리얼이 하고 인사는 별점 시스템이 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노동을 쪼개고 쪼개다 보니 노동자들은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익은 기업으로 축적되고 비용은 개개인에게 전가되는 알고리즘이 완성되는 거죠.
안병진 | 반전은 새로운 세대의 정치 세력화에 관심이 있는 교육 집단인데 지금까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에 대한 개념적 무기가 청년그룹에게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교수님 말씀을 듣다 보니 그 결핍이 좀 더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승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이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회적 해법은 정치에 있는 겁니다. 특히 지금의 변화를 몸소 이해하고 집단이 제도적 해법을 마련할 수 있어야 되겠죠.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 무대에서는 워낙 많은 이슈들이 산발적으로 터지기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문제들이 그때 그때 잠시 부각만 되었다고 바로 휘발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송주환 | 이 액화 현상이 특정 세대에만 유독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하셨던 관련 발표에서도 30대 중반 이상의 직장인은 오히려 20년 전보다 지금 더 안정성을 느끼고 있다는 결과가 있었는데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기업에서 새로운 세대의 퇴사율은 높고 기존 세대들은 절대 회사를 나가지 않는 일종의 이중 구조가 생기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노동의 액화 현상이 알게 모르게 사회적 역동성을 굉장히 떨어뜨리는 결과로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작게 보면 청년의 문제지만 연결된 고리를 추적해 보면 우리 사회의 역량의 문제이자 동력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승윤 | 말씀하신 부분에 너무 동의해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청년 문제이지만 이것을 너무 시혜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청년만을 위한 정책이따로 있고 그들을 대상화해서 사회적 약자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가게 되면 그 정책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을 통해 나타난 사회적 문제를 통해 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꾸고 동력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사회에서 서로 교차하는 복합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대의 연결고리를 찾느냐가 새로운 세대가 어떻게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것인가 와도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송주환 | 저는 지금 말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문제를 지금의 세대가 과연 해결할 수 있느냐, 거기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 그것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군대나 보육 문제들이 어려운 이슈이니 눈 앞의 전선에서 부각될 문제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참여소득을 예를 들면 그 하나의 제도를 통해 많은 문제들을 동시에 또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볼 수가 있거든요. 바로 공동체적 접근이 가능한 방법론인 거죠. 청년 세대도 이제 그런 그랜드 비전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승윤 | 만약 군대 문제를 이 세대에서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연대를 통해 그것을 관철해 낼 수 있다면 그건 아마 엄청난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단, 군대는 남자, 보육은 여자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필요한 의무와 개인의 권리를 잘 조율해서 일괄 패키지 형태로 구상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 그 자체가 디지털의 방식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AOC는 사실 그런 점을 잘 활용했죠.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Review
정치를 시작하고, ‘청년 정치인’으로 호명되어, 이 시대에 ‘청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스스로를 수도권 청년과 구별되는 ‘지방 청년’의 한 명으로 위치 지우고 있던 참이었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극심한 갈등이 세대 갈등임을 느끼면서, 세대 간의 갈등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청년 정치인으로서 청년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상대 당이 주로 사용하는 젠더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던 상황에서 본 세션은 강의 서두에서 인용한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 총체적 ‘사유’의 시간이었다 강의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과 사유를 통해 현재를 보는 눈을 키우고, 다시 실천의 영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 준 지점이 개인적으로 매우 유익했다. 다만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세션에서 다뤄진 내용이 대화와 토론으로 충분하게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이가현 | 정치학교 반전 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