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강. 송호근_전환기 시대정신과 아젠다에 대한 통합적 접근

송호근 |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장


Preview  

미국 유학 시절 아침을 설레면서 시작하는 날이 항상 있었다. 그건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글이 실리는 요일이기 때문이다. 송호근 교수님의 칼럼이 바로 그렇다. 시대의 소용돌이와 각종 인간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진리의 포착과 빛나는 언어는 저절로 글을 몇 번이나 읽게 만든다. 반전의 강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연사가 또 있을까? 그간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진리의 정신은 무엇인가? 이제 새로운 길로 떠날 채비를 하는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비전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송교수님과 함께 깊고 웅혼한 사유의 여정속에서 자신만의 빛나는 가치와 언어를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송주환 | 이번에 제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교수님 강의를 몇 개 찾아봤는데요. 교수님께서는 가끔가다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이 하실 때가 있으신 것 같아요. ‘나에게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좌파 정권에는 중도 우파를 우파 정권에는 중도 좌파 스탠스를 취하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그게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기회주의를 스스로 나의 정체성으로 선택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진영논리로 극렬하게 나누어진 지금의 시대에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송호근 | 정의라는 개념의 예를 들면 사실 586에게 정의는 엄청나게 중요한 단어잖아요. 지금 정권의 ‘자유’ 같은 거죠. 그런데 우리가 정의가 진짜 무엇인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한번 제대로 하다 보면 그것이 나라마다 역사마다 그리고 세대마다 조금씩 다른 상대적인 개념인 것을 알게 되거든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정의의 다원성과 다면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된다는 이야기예요. 586은 정의라는 것이 명확하게 하나로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세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정의하는 정의는 굉장히 단선적이고 폭력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이루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도출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안 보려고 노력했단 말이죠. 내가 볼 때 정의는 하나의 선으로 그어진 개념이 아니고 조금은 느슨한 틀 안에서 서로 소통하면서 구체화해 나가는 개념이에요. 좌파와 우파가 서로 용인한 범위 안에서 함께 협의하고 합의하면서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정의의 개념이라고 생각을 하고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은 바로 그런 것들을 제안하고 현실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안병진 | 결국 공동체 안에서는 상식의 바운더리 안에 정의가 들어가 있는 것이고 정의를 이용해 그 상식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잖아요. 이것은 도구로서의 정의라고도 할 수 있는 개념 같습니다.

 

송호근 | 사람들을 납득할 수 있게 이해시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협력주의와 능력주의로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공동체 정신이나 포용정신이 꽤 있는 사회예요. 상대를 적으로 돌리고 융단폭격을 하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송주환 | 저는 개인적으로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 각자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그것도 넘치게 잘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다만 지금 시대는 지금 세대가 만들어 가야지. 이전 세대와 소통하고 함께 협업을 하되 그 주도권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송호근 | 그래서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저는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우선 주도권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려면 이전 세대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이후 세대가 그것을 쟁취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청년 학교는 그 두 세대가 만나는 교차점이 될 수 있는 거죠. 나도 그동안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거든요. 실제로 이양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제가 학교에서 보면 40대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심지어 여기에 육아까지 겹쳐지면 정말 외부 활동은 할 정신이 없거든요.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다그치기보다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여유를 줄 수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그들이 할 일을 좀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간을 열어주는 활동이 진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병진 | 생각해 보면 선생님 그 이야기를 아주 예전부터 하셨잖아요. 실제로 60대 이상 사람 중에 여유가 좀 되는 사람들은 다 그만두어야 한다는 칼럼을 쓰신 것도 기억이 납니다. 모든 조직이 다 비슷하지만 특히 대학으로 가면 사실 그것은 정말 불편한 진실이잖아요.

 

송호근 | 나는 시대정신은 거창한 말은 잘 모르겠지만 세상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감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요즘에 과거와 좀 다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과연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는 사회적 기초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죠. 우리가 그동안 너무 제도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 근본에 되는 기초적인 부분을 좀 경시했던 것 같아요. 집을 지을 때도 설계나 골조도 중요하지만 우선 땅이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냐는 것과 충분하게 기초 공사를 하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 사회적 기초들을 사회학자로서 어떻게 평가하고 또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들을 지난 1년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수업에도 그런 이야기들을 수강생들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안병진 | 선생님 수업이 지난 6개월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간인데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가 우리 교육 프로그램의 취지와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eview

 

반전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송호근 교수님만큼 적절한 강사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과정 35년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러 가치들이 충돌하고 있다. 과거의 독립, 경제성장, 민주화 같은 확연한 시대적인 목표들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 세대는 새로운 목표를 확립하지 못했다. 지금은 기존의 목표들과 현재의 목표들이 혼합되어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확립되지 못한 채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황이다. 현재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은 기존의 ‘미래’가 ‘현재’가 되어버린 청년 세대들에게 굉장한 압박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송호근 교수님은 제도가 이들의 압박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그를 통해 청년 세대들이 새로운 민주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공간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의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청년 세대를 향한 압박은 기존 사회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기존 사회의 이분법적인 담론을 넘어서 타협점을 찾고,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해 가는 것은 우리 세대만이 할수 있다. 민주화 이후 세대인 우리는 이전 세대가 시대적 목표를 위해 싸워준 덕에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더 나은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했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사회적 역할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민준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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