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강. 정성헌_치유와 향상의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정성헌 |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Preview
호손의 저명한 소설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령 같은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 정성헌 선생님은 바로 그 큰 바위 얼굴이다. 평생 실사구시 자세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해 오신 정선생님을 뵙고 나면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은 새 노트는 금세 빼곡해진다. 우리 청년들에게도 큰 바위 얼굴이 너무나 필요한 시기이다. 비록 짧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우리 반전의 수강생들이 정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과 생명의 지혜를 영구적으로 연마해 가며 리더로 성장하는 귀중한 전환점이 되기를 절실히 기원한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선생님께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와 한반도의 새 비전은 물론이고 리더가 가져야 하는 기본 덕목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은 것이 사실은 너무 많습니다. 우선 선출직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먼저 여쭙고자 합니다.
정성헌 | 내가 20년 전에 우리 밀 운동 마치고 고향인 춘천으로 갔잖아요. 그때 지역에서 환경 운동하던 분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는데 정작 지역의 하천이나 땅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자기 지역을 만들려면 땅이나 물을 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필요하고 그것은 생활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알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만나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분들이 보통 사람의 일상에서 거리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들에게 춘천시 환경과장이 술도 사고 밥도 사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당신들 실력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귀찮아지지 않으려고 미리 대접하는 거다 진짜 인정받는 관계가 되려면 실력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민관협치라는 것도 상대가 인정을 해줘야 시작할 수 있는 거다. 그런 기본적인 틀과 내용을 인지한 채로 이야기하면 상대도 절대 당신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면 거버넌스가 시작되는 거다.”
안병진 | 선생님을 뵐 때마다 또 느끼는 점이 거의 전 연령층에 강의가 가능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초등학생부터 국회의원까지 그 눈높이에서 강연이 가능하다는 게 저는 참 신기했습니다. 선생님 소통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정성헌 | 지금이 초연결사회라고 하잖아요. 연결이 모두 되어 있는데 현실에서는 지독한 차단감을 가지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게 사실 역설이지요. 연결이 되면 될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외로움이 커지면 식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은 비만과 난임으로 연결되거든요. 지금 시대의 외로움이 만들어 내는 그 파급효과가 사실 엄청난 거죠.
송주환 | 그 말씀은 저도 공감해요. 기술로 사람들이 연결되었는데 예전보다 더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이 많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일하고 싶은 사람한테는 가서 직접 일하자고 제안을 하는 편이거든요. 거절 당하더라도 제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하는 것이니 제 손해는 없다고 보는 편인데. 요즘 세대 친구들은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움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좋게 이야기하자면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것이지만 제 기준에서 보자면 겁이 좀 많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병진 | 저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번 기회의 그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선생님께 한 가지 더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있는데 지금 우리가 정치를 바꾸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성헌 | 사실 우리가 개혁이라는 말이 거의 입에 배다시피 했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라고 생각해요. 90년대까지는 개혁이 필요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심각한 병을 얻었어요. 그것이 바로 산업화 병과 민주화 병이에요. 우리는 개혁을 위한 운동을 수십 년 동안 해왔고 그 과정에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도 나도 지금 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했을 때 저는 치유의 정치를 시작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더는 결과와 연결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공감대를 얻으면 지시하고 합의하고 교육 훈련해서 가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송주환 | 요즘, 예전에 있었던 계몽주의 운동 사례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1920년대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 계몽주의 매체가 ‘신생활’이라는 잡지가 굉장히 인상적 이었거든요. 이 잡지는 특이하게도 좌파 성향의 잡지면서도 마르크스 이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대신 현실에서의 모순을 집요하게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려고 노력했어요. 선생님의 접근 방법을 듣다 보니 마치 ‘신생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성헌 |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인정이에요. 우리의 병에 대한 인정. 개혁은 상대를 고치는 경우가 많은데 치유는 우리 자신을 고치는 것 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의 병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다음에는 우리가 얼마나 이 병을 고치고 싶은지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의지까지 확인되고 나면 우리가 병들었다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해요. 그러면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치유책을 이야기하게 되죠.
송주환 | 저는 선생님이 오늘 해 주신 말씀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솔직함과 실천력인 것 같아요.그리고 그 중 하나를 고르라면 솔직함이에요. 사실 리더가 자신과 자기 조직의 취약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자신들의 단점을 인정하는 순간 말씀하신 실천력과 바로 연결이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미국에서도 ‘애덤 그랜트’나 ‘브레네 브라운’ 같은 가장 잘나가는 리더십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리더가 취약성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그 조직에 불어넣어지는 새로운 힘에 관한 것이거든요. 하지만 그 분들은 리더 개인의 취약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조직의 취약성까지 함께 이야기하자는 것이니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헌 | 나는 진짜 변화는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될 때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아요. 그러니까 마음을 열고 서로의 병을 인정하면서 그 치유책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무척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이번 수업에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우선 진짜 이야기를 서로 해야 해요. 반전도 사실 그런 이야기가 꽃피는 곳이 되어야죠. 그게 진짜 소통이고 그것이 운동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Review
'어른 됨'은 지난 몇 년간 내 삶의 가장 큰 화두였다. 꿈을 묻는 질문에 어떤 직업 대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답하게 될 즈음부터 어쩌면 이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절망스러운 근거로 남아버린 모습들을 수도 없이 목격해 왔지만, 그럼에도 어른된 삶만이 구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걸 온 몸으로 겪어왔기에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태도를 견지하며 어렵사리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 우연히 저편에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어른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시간을 거슬러 그가 뿌리내린 흔적을 보며, 역시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겠다는 위안을 얻는다. 정성헌 이사장님도 그런 어른이었다. 특강 당일, 칠판에 <대국착안 소국착수, 실사구시 정도실천>을 큼직한 글씨로 슥슥 적어두시곤 리더십과 생명과 실천을 말하던 그의 옹골찬 기운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던 순간을 기억한다. 하루걸러 허무하게 죽거나 다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소식 앞에 무력해질 때, 문득 그가 거듭 힘주어 말했던 <생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생명, 생명력. 숨을 쉬며 살아있는 존재의 힘. 낯익은 단어를 새삼 생경하게 곱씹으며 다짐한다. 이 무겁고 귀한 힘을 더 이상 헛되게 잃고 싶지 않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살리는 기쁨을 느끼는 데 힘쓰고 싶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여기다.
양소희 | 정치학교 반전 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