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강. 천영우_한반도 안보의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길은?

천영우 | 전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


Preview  

내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즉 이념 이전에 어떤 입장이 탁월한가 아닌가를 인생을 아는가 아닌가의 관점으로 판단한다. 흔히 한국의 진보나 보수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어떤 이들은 이념을 떠나 구체적 인간 군상의 악행과 선함, 가치와 이익, 힘과 설득력 등의 복잡함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최근 핵 논쟁에서도 인생과 구체적 현장을 모르는 논의들이 범람하고 있다. 나는 이념적 좌표를 떠나서 천영우수석님의 인생과 현장에 대한 통찰을 무척 존경한다. 그런 분에게 조언을 받는 리더는 자신이 얼마나 복이 많은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 수강생들도 리얼한 현장은 어떻게 작동되는가의 통찰은 물론이고 탁월하고 용기 있으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참모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수석님께서는 지금까지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많은 경험과 기여를 하셨는데 애초에 왜 그 길을 선택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천영우 | 제가 외교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거든요. 우리 선조가 ‘천만리’라는 명나라 장수였는데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에 원군왔다가 여기에 정착을 하게 된 케이스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정학적인 상황과 그로 인한 역사적 사건 때문에 한국인이 된 거잖아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나도 외교관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다음부터 차근차근 그 꿈을 키워갔었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안병진 | 수석님은 예전부터 한국의 외교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 지금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천영우 | 저는 사실 젊었을 때는 세상 모든 분쟁이 결국 외교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제가 36년 정도 이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거기에 대한 회의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국가라는 것은 정부가 있고 법이 있기 때문에 관리가 가능한데 국제 사회는 아무리 국제법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힘의 영역이거든요. 결국 국제 관계라는 것이 힘의 지배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외교라는 것이 힘의 지배를 연성화할 수는 있지만 그 본질을 바꾸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대한 실감을 요새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 한가운데 있는 거죠.

 

안병진 | 대표적으로 언제 가장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셨나요?

 

천영우 | 대표적인 것은 북한 핵 문제죠. 제가 6자 회담 수석대표만 2년 이상 했었고 대북 경수로 사업 때문에 북한도 많이 왔다 갔다 했었고 원자력발전소 지어준다고 또 한 2년 보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거의 20년의 시간을 거의 퇴직할 때까지 그 문제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 같아요. 항상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면 사실 좀 허무하죠. 해결된 것이 거의 없으니까…

 

안병진 | 지금 해 주신 말씀들에 대해서는 저 역시 새로운 관점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석님께서는 앞으로 정치를 할 새로운 세대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실지도 궁금합니다.

 

천영우 |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제 솔직한 생각을 공유하자면 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대한민국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어느 정도의 컨센서스는 있어야 그다음 미래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정치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습니다.

 

송주환 | 저도 관련해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젊은 세대가 근대사와 북한 이슈에 도통 관심이 없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통일에 대해서도 아무 감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언어는 같지만 다른 국가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 수석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나는 지정학적 이유로 한국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내가 외교관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지정학적 요소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잖아요. 지금의 세계는 힘의 시대이고 그 힘도 예전과 달리 다극화가 되어있는 상태인데 그러면 새로운 세대의 입장에서 민족이라는 개념과 통일이라는 이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천영우 | 나는 민족주의 시대는 부분적으로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제 그 시효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영국에서 민족주의가 다시 부흥하는 모습이 있는데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만 보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가 통합보다는 분열을 야기하는 그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한민국도 이제는 다민족국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전세계 인재들이 몰려와 한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그런 국가와 사회를 꿈꿔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자유민주주의는 당연히 그 기반이 되는 이데올로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문제의 경우는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까지는 없다고 보지만 북한 인권과 자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족적인 특수성을 고려할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꼭 통일이 되어서 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같은 게르만 민족이지만 그들이 통일을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자유롭게 왕래하고 경제적인 교류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우리도 그런 상황이 오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안병진 | 수석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요. 나머지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전 수강생들에게도 좋은 간접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eview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 방향, 동아시아 정세에서 신흥 패권 국가에 대한 대응 전략이 부재한 현상황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동의한다. 현장에 발을 딛고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외교 안보 전략을 설계해온 강사의 경륜을 깊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통일을 국가주의적, 정치적 통일에 국한하여 사고하지않아야 한다는 강사의 관점 역시 동의한다. 다만 이를 문화전쟁, 정보전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관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문화적, 정보적 접근은 필요하나 이를 전쟁과 대결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정보적 접근이 가능해지려면 우선적으로 남북관계에 남한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현재에는 그러한 여지가 사실상 전혀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다. 강사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 정권은 현재 정권 유지에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나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여러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북의 변화를 이끄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대등한 국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통일을 국가적 전략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기본 인식의 전환을 고민할 때다. 남북의 긴장 관계를 서서히 완화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정상 국가화하여 그들의 변화를 유도해 내는 방식을 전향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형남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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