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 이근_혁신경제의 해법과 국가의 새로운 역할은?

이근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석좌교수


Preview  

몇 년 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마리아나 마주카토의 혁신 국가론을 접하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 국가가 단지 공공지출의 자원을 넘어 새로운 도전과제를 찾아내고 공적 가지 창출의 역할로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신선했다. 그녀는 최근 EBS의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도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동시에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세상은 갈수록 마주카토의 관점이 더 필요한 정도로 급격히 바뀌고 있는데 한국은 행정 관료는 물론 모든 분야에서 가치 창출과 이를 위한 역량 잠재력 발현은 고사하고 근대적 관리에서도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주카토와 같은 화두를 오랫동안 제기해 오신 이근 교수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마치 오래전 첫 대학원 국가론 수업처럼 설레는 마음이었다. 경제 석학이신이 교수님은 경제학과 국가론을 넘어 그 이상의 열정의 불꽃을 던져 주셨다. 국가의 새 역할을 주도할 넥스트 가지 세대의 정치 세력화의 화두를 말이다. 우리는 다시 담대한 꿈을 꾸기 위해 그를 만나야 한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교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위기에 대해 일관되게 경고를 해오신 분이십니다· 요즘 들어 보호주의의 진영화 등 뉴노멀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새로운 현상들도 많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교수님께서는 지금의 이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가요? 과거보다 우리의 위기가 커졌다고 볼 수있을까요? 아니면 한국에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고 있다고 평가하시나요?

 

이근 | 한국 경제의 위기론에 대해서는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이야기하던 식으로 말씀드리면, 한국 경제의 위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두 개의 벽과 한 개의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벽은 한국이 1인당 GDP가 미국 대비 70%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일본이 과거에 그 벽에 부딪힌 후 거의 20년 넘게 정체 중이거든요. 한국도 충분히 일본처럼 그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벽은 규모의 벽입니다.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정도 되는데 이게 20년째 정체된 상황입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30년 전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2% 정도 였는데 지금은 거의 2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1인당 소득과 전체 경제 규모가 함께 정제된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죠. 여기에 하나의 추세가 더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씩 떨어져 이제는 1%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개의 벽과 한 개의 추세가 기존 대한민국의 위기를 잘 설명해준다면 최근에 새로 추가된 두 개의 변수는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다시 보호무역주의가 부흥하고 있다는 점은 통상국가인 우리나라에게 대응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출산율과 고령화의 문제입니다. 이 말은 한국의 생산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거든요. 지금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내우외환의 시기일 수 있겠습니다. 외부도 안 좋고 내부도 안 좋고. 이를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국가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진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병진 | 예전보다 훨씬 위기가 심각해진 거네요.

 

이근 | 대외환경이 악화됐죠. 지난 30년은 그래도 개방된 환경이었는데 지금의 미·중 갈등이 앞으로 30년을 더 갈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우리와 연관된 다른 이념을 가진 두개의 슈퍼 파워가 서로 갈등 관계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기 이상의 생존이 걸린 도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안병진 | 교수님은 경제학자신데도 경제적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닌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먼저 말씀해 주시네요. 그만큼 지금의 위기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겠죠?

 

송주환 |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세계를 시장으로 승부해온 국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 그런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부가 상품을 생산하면서 선진국들과 경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 경쟁을 하더라도 기존의 포지셔닝을 강화하여 한국만의 자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 문제는 둘 다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보는 학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추격도 쉽지 않고 추월도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이근 | 저는 재벌들은 알아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낼 역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민생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결국 국가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안병진 | 그러면 앞으로 국가의 역할이 어떻게 변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이근 | 산업 정치라는 표현이 한동안 사라졌었고 사실 지나간 과거의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완벽하게 부활한 상태입니다. 과거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산업 정치를 통해 경제를 부흥시킬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서구에서 지적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표현은 '산업 부흥 국가'보다는 ‘역량 지향 국가'로 버전업을 한 것 같아요. 개인이든 기업이든 산업이든 개별 경제 주체의 역량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송주환 | 지금 말씀하신 역량 지향 국가는 국가가 그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그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 개별 경제 주체의 편의성이 극대화할 수 있는 정도 수준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목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도 그걸 해낼 만한 역량이 필요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역량 지향국가를 추구하는 국가 자신의 역량은 어떻게 증진 시킬 수가 있을까요?

 

이근 | 사실 국가는 시장에서 규제를 만드는 주인공이잖아요. 규제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개별 경제 주체의 자유도와 창의성을 억누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규제는 또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제가 부족하면 공정 시장이 무너지고 규제가 과도하면 자유 시장에 피해가 가는 딜레마적인 성격이 있는 거죠. 그것을 유연하고 스마트하게 운영해 보자는 것이 역량 지향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아까 '역량 지향 국가’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의 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실 그것이 바로 선출직 정치인이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행정이라는 영역은 기본적인 속성이 더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것을 조정하고 리더십을 통해 다음의 방향성을 제시할수 있는 사람은 국가 안에서 선출직 정치인이 유일합니다.


Review

 

한국의 1인당 GDP는 미국 대비 70% 도달하여 이제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적어도 못살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반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 정도로 규모의 경제로서 20년째 정체되어 있고, 잠재 성장률은 1%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중 갈등은 심화되어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위치에 있는 한국은 정확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자칫 국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균형을 잃을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이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1인당 GDP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위안 삼아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서 주축이 되고 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기술은 기존의 다른 기술과 달리 단순히 한 나라에만 영향을 주거나 한 나라의 법과 정책으로만 규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국제적으로 보편 타당한 규제 및 규범을 빠르고 정확하게 정립하여 각 경제 주체가 스스로 자유롭게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혁신 경제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디지털 대전환기에서 국제적인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동시에 각 경제 주체가 혁신을 추구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 누구든지 본인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희철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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