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김양희_기술 대혁신과 지경학적 변동의 역동성

김양희 |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Preview  

제도권 정치에 뛰어드신 분들의 용기에 감탄할 때가 많다. 한국은 반(反) 정치의 나라이기에 정치인을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큰 위험이 상존하는 영역에서의 공적 모험이란 정말 쉬운 게 아니다. 나는 최근 제도권 정치 참여를 고민하는 분들의 용기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이제 세상은 수십년간의 질서에서 무질서로, 평형에서 혼돈으로 진입했다. 이 퍼펙트 스톰의 시대를 어떤 선장과 함께 헤쳐 나갈지의 문제는 우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김양희 교수는 최근 보호주의의 진영화, 신뢰가치 사슬 등 통찰력 있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생존의 등대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중요한경제 안보 화두인 공급망에 대한 행정부, 의회와 기업의 협소한 시야를 넘어서는 귀중한 조언들을 내놓고 있다. 현장을 잘 이해하며 동시에 진정성 있는공적 지식인의 용기를 가진 이를 만나는 일은 경이로운 여행과 같은 경험을 준다. 김교수와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우선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해 보죠. 김양희 교수님은 거의 20년 넘게 학계와 현장을 넘나들면서 그 과정을 지켜보셨는데요. 지난 몇 년간의 이 극심한 혼돈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김양희 | 사실 학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본다면 지난 3년이 무척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제 연구의 특성상 외교나 안보 쪽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경제학의 영역 안에 있거든요. 그런데 지난 3년은 제가 아는 어떤 문법으로도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그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터졌을 때 정말 둔탁한 둔기를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어요. ‘아! 정말 세계가 변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쟁은 경제적인 논리로는 절대로 설명이 불가능한 그런 전쟁이에요.

 

안병진 |. 말 그대로 뉴노멀이군요.

 

송주환 | 저 역시도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무척 혼란스럽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신뢰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김양희 | 우리가 보통 지금의 현실을 ‘보호주의의 진영화’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진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상이 가변적이고 유동적이고 선별적입니다. 진영화가 된 것과 아닌 것이 막 섞여 있어요. 우리는 ‘보호주의의 진영화’라고 지금의 상황을 규정짓고 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우습게도 ‘모호함’인 거죠. ‘보호주의 진영화’라는 표현의 방점이 보호주의도 아니고 진영화도 아닌 각자도생과 철저한 이기주의고 ‘신뢰’에 대한 방편이 때로는 진영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호주의이기도 한 상황인 겁니다. 제가 요즘 ‘신뢰가치사슬’이라는 개념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이것 역시 외교 안보 논리의 ‘신뢰’와 시장 논리의 ‘가치사슬’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결이 다른 두 개의 논리가 어정쩡하게 동거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불안’은 이제 기본값이 된겁니다.

 

송주환 | 교수님 말씀 중에 ‘나는 신냉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은 전선이 명확해야 하는데 지금의 전선은 너무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그것보다는 비평화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라고 하신 걸 방송에서 보고 그 표현이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평화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김양희 | 저도 그 표현이 딱 와 닿아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시대는 분명히 끝났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국가의 역할이 더더욱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신뢰가치사슬에 해당하는 미·중 관계에서의 갈등 요소가 기술 공급망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광산, 에너지, 물류, 금융까지 모두 가세가 되었어요. 이렇게 세계 경제의 공급망이 재편되면 결국 그것을 감당하고 풀어내야 하는 조직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이제 국가의 제도, 설계, 정책, 외교 역량이 너무너무 중요해진 시점이 왔다는 것입니다.

 

안병진 |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다. 정치학교 반전은 선출직 정치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교수님은 앞으로 선출직 정치인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김양희 | 우선 실행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본 선출직이나 대통령실에서 행정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무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좀 더 나눠서 설명하면 선출직 정치인에게 두 가지 능력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우선 정치력은 당연히 필요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법을 좀 알아야 해요. 모든 제도는 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니까요. 법을 모르면 디테일에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옆에서 지켜봤을 때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논쟁에서 진보 진영이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던 지점은 태도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보수는 대부분 이해당사자가 함께 참여하거나 심지어 본인이 그 이해에 연결된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진보는 대부분 대리전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사안을 대하고 바라보는 관점이나 마음가짐 자체가 다릅니다. 관철하고자 하는 투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선출직 정치인에게는 ‘당사자주의’와 같은 치열한 끈기와 깡이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병진 | 저는 이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수강생들이 ‘내가 무엇을 모르고,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과정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수강생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양희 | 저는 지금의 한국 정치에 세 가지가 없다고 봅니다. 우선 경쟁이 없습니다.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서로 봐주기 식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담합 구조에요. 그러다 보니 평가가 없습니다. 평가가 없으면 누가 잘했는지와 못했는지를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축적이 일어나지 않고 그 결과 시스템이 없습니다. 저는 경쟁과 평가 그리고 시스템이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정치의 삼무’인 거죠.

 

안병진 |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앞으로 선출직 정치인이 될 수강생들에게 당부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실까요?

 

김양희 | 지난 3년이 그랬듯이 기존의 문법으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후전환과 디지털 전환에 관련해서도 나름의 방법론을 꾸준하게 고민해야겠습니다. 지정학적 기한과 기후전환 그리고 디지털 전환의 세 가지 변화의 방향성을 어떻게 분석하고 맥을 잡아 해결책을 만들 것인가가 대한민국 미래의 운명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Review

 

김양희 교수는 말뿐인 국익이 아닌 얽히고설킨 실제를 이야기한다. 무역전쟁이라 불린 미중 갈등 그리고 우크라-러시아 전쟁의 속살에는 돈의 이해관계가 서 있다. 강고한 무역장벽의 이면에는 실상 제재에서 벗어나 있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경제와 안보가 어느 때보다 결착된 입체적 상황에서 우리는 따라가기 급급해할 따름이다. 우리 정치는 과연 이러한 복합성을 감당할 수 있는가? 비관적이다. 한국은 어느덧 심리적 G7이라지만 아직도 단편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비평에 몰두한다. 정권마다 각자의 이상과 바람만 밀고 나가면 그만이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전환과 위기를 노래하지만 무책임하게 시대의 평화에 기대어 있다. 국익과 미래는 커녕 닥친 전쟁과 기후 위기에도 둔감하다. 그래서 선출직 정치인을 지향하는 우리는 성장해야만 한다. 편승의 욕망을 밀어내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이야기하자. 그것이 오늘날 불안이 일상이 된 세상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정치인이 가져야 할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배강훈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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