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강. 홍경준_한국 복지정치의 주요 아젠다는?
홍경준 |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Preview
정치학교 반전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이 몰가치의 시대에 어렵지만 가치를 부단히 성찰하는 정치가를 육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홍 교수님과의 만남에서는 잠시 가치라는 화두를 까맣게 잊고 자리에 앉았다. 아마 나의 무의식에는 내가 복지라는 영역에 대해서는 가치에서부터 세부 논쟁점까지 이미 잘알고 있다는 착각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홍교수님은 앉자마자 ‘알코올 중독자에게 복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질문으로나를 흔들어 놓았다. 이후 기본소득론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그간 내가 수없이 읽은 자료의 기본 가정도 흔들어 놓았다. 역시 성균관대에서 탁월한 강의로 티칭 어워드를 받은 교육자 다운 초반 흔들기 전략이었다. 이번 수업에 앞서 다양한 논쟁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잠시 내려놓고 가장 본질적 질문에서부터 다시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홍 교수님의 시각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그의 접근법은 반전 청년들의 공통된 아젠다의 가치와 내용을 구성하는 데 유익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교수님께서는 이번 강의에서 어떤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으세요?
홍경준 | 국정이라는 게 워낙 넓고 이슈도 많아서 그때그때 현안들이 다 다르거든요. 저는 그래서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는 정책을 제안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복지라는 게 사실 온정주의적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계몽주의적이기도 하거든요. 알콜 중독자는 술을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하지만 복지의 관점에서는 이분들께 재활의 기회를 줘야지 술을 줘서는 안되잖아요.
안병진 | 그렇네요. 복지의 구체적 내용 이전에 도대체 복지란 무엇인가를 경합하는 가치의 관점에서 잘 생각을 안 해봤는데 정말 그렇네요.
홍경준 | 제가 요즘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복지’의 의미입니다. 앞에 ‘복’은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고 뒤의 ‘지’는 ‘보일 시’에 ‘그칠 지’가 붙어있어요. 물질적 풍요가 중요하지만 그 안에는 적절한 멈춤이 있어야 한다고 전 해석을 했어요. 보통 복지를 행복과 연결해서 생각하고는 하는데 행복의 조건이 꼭 물질적 풍요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당연히 소비 능력이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거기에는 자기 존중감의 충족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 요즘심리학 연구 결과들입니다. 그리고 복지는 권리와 의무가 함께 하는 것이에요. 의무 없는 권리만 있어서는 공동체 유지가 어렵죠. 그리고 의무 없는 권리는 그냥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행복감도 증대되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복지 시스템이 사회에 안착되고 또 고착화되면서 의무가 동반되지 않는 경향이 더 커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존감 있게 받을 수 있는 그런 복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안병진 | 존엄의 가치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기본소득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보통 기본소득을 주장하시는 학자분들은 기본소득은 낙인 없이 모두에게 주는 복지 제도이기 때문에 가장 존엄을 보장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을 하시거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홍경준 | 우선 저는 돈이 존엄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기본소득은 국가에서부터 돈을 받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양산하는 제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은 자기 존중감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처음에 잠깐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행복과 연결되고 복지를 증진시킬 수있는 방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송주환 | 예전 교수님 강의 중에 ‘기본에서 기본소득을 생각한다’라는 발표를 본 적이 있는데요. 거기서 교수님은 기본 소득은 너무 단순하고 너무 오래되었고 너무 배제적인 제도라고 설명하셨거든요. 전 그 중 너무 배제적이라는 표현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홍경준 | 그게 제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예요. 기본소득은 특정한 정치 공동체에 속한 소속원들에게만 주는 거죠. 예를 들어 외국인이나 난민에게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국적을 기준으로 수급권을 가르는 건데 이것은 너무 배제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제도는 안 그렇거든요. 사회보험은 해당 국적이 아니더라도 보험료를 내면 받을 수 있잖아요. 저는 기본소득은 슬로건만 보면 진보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동적인 요소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안병진 | 이 부분은 기본 소득을 주장하는 분들에게도 지적되지 않은 포인트 아닌가요?
홍경준 |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전에 그리스 시대의 시민들은 민주정에 참여만 해도 복지의 혜택을 받았지만 당시 여성과 노예는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시민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기본 소득은 그 취지만 놓고 본다면 비슷한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주환 | 그런데 기본소득을 주장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들 안에서도 조금씩 방향성이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IT기업가들 중에도 기본 소득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어차피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를 빼앗기는 속도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니 아예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반대급부로기본소득을 하자는 분들도 있거든요. 유전자 기술이나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갈등을 기본 소득으로 상쇄시키자는 주장이죠. 여기에 대해서는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홍경준 | 디지털세나 로봇세에 대한 논란과도 연결되는 이슈인데요. 우선 저는 IT의 세계에서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어요. 저는 이런 식으로 국가가 기업에서 돈을 걷어 개인에게 나눠주는 방식 자체도 문제지만 이것을 배분하는 원칙이나 논리도 사실상 없기 때문에 더 큰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럴 바에는 저는 개인의 데이터를 가져다 쓰는 기업이 직접 개인에게 그 대가를 주도록 하는 방향으로 그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 과정에 소득세의 형태로 과세를 해면 되는 것이죠. 저는 세금을 걷어서 공동체를위해 사용할 때 필요한 중요한 전제는 그 과정에서 그 사회에 이로운 에너지가 생겨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병진 | 말씀을 들어보니 교수님이 왜 ‘국민활동급여’(예를 들어 돌봄과 교육활동으로 소득 능력이 감소했을 때 이를 해소하여 사회적 위험에 대응)라는 아젠다를 제안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홍경준 | 그렇죠. 저는 사회적으로 그런 에너지를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리의 목록을 확장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의무의 목록도 함께 확장 시킬 수 있는 정치인이 저는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Review
강의 서두에서 홍경준 교수님의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살면서 복지혜택을 받아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개인적으로 어릴 적 의료사고로 인해 오른손에 지체 장애를 얻게 되었다. 어릴 땐 휘어진 팔이, 근력이 약한 손가락이 콤플렉스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릴 땐 한여름에도 긴소매를 입을 정도로 휘어진 팔을 가리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일자리를 구해야 할 때 장애인 의무 고용으로 인해 남들이 가기 어려운 공공기관을 조금 쉽게 들어갔다. 나에게 주어진 복지혜택 중 가장 큰 것이다. 결국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일하기 위해, 더 살기좋은 세상을 위해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복지라는 화두는 그만큼 우리의 삶에 밀접해 있다. 하지만 복지가 정치화되는 순간 복잡해 지는 것같다. 복지 담론에 대한 이념 논쟁이 시작되고 이는 우리의 삶과 멀어지게 된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복지란? 적절한 물질적 풍요와 심리적으로 자기 존중감이 축적된 것을 말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와 관련된 의무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받음으로써 보는 혜택에 어떠한 의무도 함께 부여하여균형감 있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추구해야 할 복지정책에 대한 바른 방향성과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강의였다.
한영수 | 정치학교 반전 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