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정준화_기술 급변 시대에 공공정책의 도전과제는 무엇인가?
정준화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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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오바마 정부 시절 백악관의 인공지능 정책에 대한 문건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흔히 한국에서 정부 일 자문하다 보면 정책 보고서가 도대체대통령실, 각 장관실, 의회, 지자체 등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나오는 걸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대개 ‘창조 경제’처럼 모호해서 등대로써 역할을 상실하고 무의미한 형용사로 떠돌다가 곧 캐비닛에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 보고서는 연방 차원에서의 급에 딱 맞으면서도 이후 각 레벨의 조직들에 귀중한 실천적 지침으로 훌륭했다. 만약 한국적 자문 방식에 익숙한 내가 최근 모두의 화제가 된 ChatGPT에 대해 중앙 정부나 혹은 의회 문건을 쓴다면 이 인공지능 정책 지침서와 얼마나 다를지 짐작이 간다. 앞으로 우리 반전의 수강생들이 이 기술과 공적 리더의 관계에 대해 좋은 화두를 가지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정준화 박사를 만나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지정학을 넘어 지경학, 기정학의 시대가 아닌가?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박사님 입장에서 선출직에 진출하려는 청년들에게 기술과 관련한 어떤 강의를 해주시고 싶으세요?
정준화 | 사실 정치를, 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기술을 잘 모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 보니 기술 그 자체보다 지금 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유행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아요. 기술의 적용과 발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정치인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인데 너무 단편적으로만 접근한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관계법이나 규제를 만들 수 있거든요.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구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송주환 | 저는 지금 말씀하신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정치인은 개별적인 기술에 대한 디테일은 모르더라도 그 기술들의 트렌드는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정치인들은 전반적인 기술의 트렌드에 대한 이해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 가장 트렌디한 기술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모두가 ‘메타버스’를 이야기하던 시점이 있었어요. 지금은 모두가 ‘ChatGPT’를 이야기하죠. 대중이나 언론은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정치인까지 이렇게 메뚜기 뛰듯이 관심사가 바뀌어 버리면 그 사회 제도의 불안정성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거죠.
정준화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기술인데도 특정한 계기로 사회적 낙인을 찍혀버리면 그 발전 동력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의 ChatGPT는 AI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실패 사례를 양분으로 나온 서비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안병진 | 그러면 박사님은 이와 같은 기술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그것의 공공적 함의, 이것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준화 | 저는 학교에서는 정책을 전공했고 제 관심사가 이쪽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그 사이에 수많은 알려진 기술이 있었어요.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사물 인터넷, 자율주행 등등이요. 사실 전 세부적으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죠. 하지만 정책적인 변화를 살펴보면 지금 와서보면 유의미했던 정책보다는 그렇지 못했던 것들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씀하신 대로 기술 자체에 집중해서 지원 정책을 만들다 보면 그 기술에대한 사회적 관심이 잠잠해지면 그 정책도 함께 의미 없게 되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만들고 나면 이미 사회적 효용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안병진 | 그러면 정치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무엇을 안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태도가 더 필요한 것 아닌가요?
정준화 | 맞아요.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병진 | 결국 기술이 제대로 사회화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정준화 |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T 기업은 거의 특출난 개인에게서 시작된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좋은 편이죠. 반면에 산업의 기술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태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불쑥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 이후에 생태계가 뒤따라 생기고 규제는 더 뒤에 생기게 됩니다. 거의 이해력이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만들다 보니 때가 지나고상황이 바뀌면 더 이상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실효성이 없는 규제가 되는 거죠. 생태계가 없는 상태에서 규제도 중구난방이다 보니 문화가 만들어지기쉽지 않은 구조인 것 같습니다.
안병진 | 오늘 박사님 이야기 들으니까 저는 더 비관주의자가 되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청년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정준화 | 사실 다른 것보다 갈등만 잘 해결해 주면 기술은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자율주행 기술의 예를 들면 트럭기사 입장에서는 이것은 이제 와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야기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사회적연대, 사회적 약속이 필요해요.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인의 역할이 필수적이죠.
송주환 | 그런데 한국의 디지털 산업을 보면 분명한 장점이 있잖아요. 오리지널리티는 약하지만 베리에이션은 강하거든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감’이 좋다고 할까요? 그래서 별것 아닌 기술을 함께 결합하여 우리만의 유의미한 서비스를 만드는데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접화 문화가 발달한 셈인데 우리의 정치인들도 이런 우리만의 특징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정준화 | 지금 정말 중요한 말씀 하셨는데, 전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하는 게 많다고 볼 수 있어요. 한 나라 안에서 그 나라만의 원재료, 원천기술과 외국의 것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완성품까지 만들어서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결코 많지가 않아요. 이것은 엄청난 우리의 장점입니다.
안병진 | 정말 쉽지 않는 문제네요. 기술의 트렌드에 장단점까지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정준화 | 저도 이 업무를 꽤 여러 해 동안 담당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영역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을 수강생분들께 잘 전달할 수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view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을 이끄는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증이 많았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기술 발전을 이룬 사회에서 법과정책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와 리더십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였다. 실제 혁신적인 리더십은 기술의 발전과 진보를 이루어냈지만, 과도한 리더십 또는 그 반대의 리더십으로 인해 야기된 과도한 규제와 문제들은 결국 창의적인 개인과 기업의 관료화 문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공공정책에서도 인재양성 교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투자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창의적인 인재가 양성이 되면,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 역시 창의적인 공간으로 탈바꿈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인재양성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며, 기술혁신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 변화하는 기술과 그것을 구축하는 인프라와 환경을 구축하는 문제는 최근 열풍인 ChatGPT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그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정부 주도가 아닌 데이터 주도의 기술혁신이야말로 트렌디함을 넘어선, 트렌드를 리드하는 모습으로 갈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끝으로, 최근 떠오르는 기술의 현상에만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진 배경, 그리고 그 기술의 수혜자가 될 국민을 위한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 오늘날 정치인의 필요 덕목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바라볼 수 있는 정치인이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최준영 | 정치학교 반전 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