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조희정_소용돌이 정치에서 로컬의 가치는 무엇인가?

조희정 |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Preview  

창원은 내가 오래전 교수로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비록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갓난아기 시절부터 서울에서 자란 나는 전형적인 서울 시민이다. 그 당시 내가 만난 학생들의 지역에 대한 가장 큰 바람이 스타벅스 입점이라는 사실에서부터 ‘강남좌파’인 나의 놀라움은 시작되었다. 더 놀라운 건 어느 교수님과의 대화였다. 내가 평소 존경해 온 그 교수님은 항상 신중하고 합리적 시각의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안 교수, 솔직히 말하면 말이야 난 영남 공화국이 독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이 서울 중심주의가 지긋지긋해.” 그때 이후부터 난 공존의 공동체, 즉 공화주의 정치학을 백지에서부터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역 공존과 혁신 화두를 치열하게 현장에서 모색해 온 조희정 박사는 그러한 공화주의 정치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무한한 열정과 유쾌함으로 가득한 조박사와 각 지역에서 고투하는 우리 수강생과의 며칠 후 만남이 너무나기다려진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박사님께서는 사실 10년 전만 해도 네트워크 이론과 시민정치에 대한 선구적 이론가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로컬의 담론과 솔루션에서 큰 활약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있으신 건가요?

 

조희정 | 제가 2000년대 초반 부터 온라인 정치 운동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안철수 현상과 촛불을 거치면서 뭔가 한계에 부딪힌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우연한 계기로 강원도에서 로컬 운동의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고 아주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지역정치나 로컬 운동이 많은 어려움 속에 있지만 그 미래의 가능성은 굉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분야를 아예 옮기게 된 것이죠.       

 

안병진 | 지금 지역 정치의 현실적 어려움을 말씀하셨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일까요? 

 

조희정 | 우선 지역 정치인이 그 지역을 잘 몰라요. 그 지역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서울에서 정치하고 재선을 위해서 시, 군, 구의원이나 지역의 유지들만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과 멀어지게 되어있어요. 사실 정치인들은 그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과의 접점을 늘려야 현장 정치도 가능하고 생활 정치도가능한 것인데 그게 안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세금이 사용되는 구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많은 비용이 중앙 정부에서 조달되다 보니 지자체가 독립적으로 무엇을 해볼 생각을 별로 못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지자체가 독립성이 전혀 없이 의존성만 심화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송주환 | 제가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어느 날인가 전주에서 브랜드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왔었어요. 평소에 로컬에 관심이 있고 강준만 교수님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궁금해서 전주에 내려갔어요.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 토호들과 소통을 좀 했었는데 제가 좀 놀랐던 것은 그들은 실제로 어떠한 변화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강준만 교수님은 서울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지방에 새로운 개혁의 물꼬가 생겨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하신 분인데 정작 지방에 계신 유지분들은 이런 주장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조희정 | 말씀하신 것처럼 지역 유지나 토호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의 구조가 안착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좋은 것이니까요. 심지어 그것이 지역에 안 좋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제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이 지역 분들의 그 복잡다단한 심리예요. 로컬의 낭만과 그 반대급부의 정체된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틀랜드 같은 사례가 주는 선망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왔거든요.  

 

송주환 | 저도 포틀랜드 사례에 대해서는 재미있게 느낀 점이 있는데요.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매거진이 ‘킨포크’거든요. ‘킨포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한 친구들이 은퇴 후 포틀랜드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살면서 같이 밥 먹고 놀면서 그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한 매체거든요. 근데 ‘킨포크’가 인기를 얻어 서울에 오니 원래 취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방식으로 소비가 되더라고요. 아예 모르는 사람끼리 시내 레스토랑을 빌려 킨포크 스타일로 저녁을 함께 먹는‘소셜다이닝’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 참 생경하다고 생각했어요.

 

조희정 | 그렇죠. 스타일만 가지고 오는 것은 결국 그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죠. 3년 안에 80% 이상이 정리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분들은 그 과정을 겪으면서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애착도 생겨나고 말이죠. 그리고 5년 정도 지나면 적응을 하는 것을 넘어 지역에 대한 새롭고 색다른 관심까지 생겨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거죠.

 

안병진 | 전 좀 막연하게 지역에 대해서 늘 비관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조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에서 대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꾸준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면 우리 반전에서 선출직을 꿈꾸는 청년들이 이런 분들의 정착과 그 지역과의 온전한 결합을 위해 가져야 할 정치인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일까요?

 

조희정 | 청년 정치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 좋아요. 말도 잘 통하고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그런데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다 달라지는 거잖아요. 당론으로 정하면 거기에 반발하기 어렵고 또 자신의 소신대로 반발이라도 했다간 지도부 눈 밖에 나서. 불이익을 당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이상과 현실의 갭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좀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 자체를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젠틀하고 매끄럽지만 거짓말도 좀 섞여 있는 이른바 도시 스타일인 거죠. 근데 제가 지역 정치를 연구하면서 로컬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분들은 정말 그런 것이 없어요. 그냥 항상 직진이에요. 이런 스타일의 토론을 5년 정도 하니까 저도 이 날 것의 스타일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요. 지역에서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역 정치라는 것 자체가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송주환 | 제가 로컬 관련해서 재미있게 본 포인트는 그 의의와 성공의 냄새를 인지하는 기획자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요새 친구들 하고 대화하면서 제가 우리 세대와 다르다고 느꼈던 지점이 바로 로컬을 미래의 자신들의 정착지로 실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라면 이런 세대적인 감수성을 꼭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조희정 | 그것도 굉장히 재밌는 토론 거리예요. 그 아랫세대의 감수성이 새로운 로컬의 문화를 가져올 수는 있는데 그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해서 정착률이 높다고 할 수는 없거든요. 왜냐하면 디지털 노마드의 문화에 또 익숙하니까요. 여러 가지 사회 과학적인 면을 동시에 관찰해 볼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아요.  


Review

 

다양한 귀농 부부 사례에서 로컬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어디에도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인구를 유치하겠다는 막연한 인구 주의에 기반한 내용은찾아볼 수 없었다. 장밋빛 인구추계도, 무조건적인 산업단지의 설정도, 행정구역 통폐합이나 메가시티 같은 거대 전략도 없었다. 자기 자본으로 시작하여 정착한 다음에 지원금을 받았고, 그러한 지원금 역시 새로운 가치를 위한 투자로 이어졌다. 이주자들에 대해 지자체나 지역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분을또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그 역할을 대체하였다. 먼저 정착하여 지역 어르신들에게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이주자들에 대한 포용도 이끌어내고 있으며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와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골 지역까지 차를 끌고 찾아오게 만들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 로컬에서의 생활은 ‘리틀 포레스트’와 같을 것이라는 환상, 지역으로의 이주는 도시에서의 실패라는 폄훼, 무조건적인 지원금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시혜적 발상, 경쟁적 행정구역 개편이나 정주 인구 유치 만이 중요하다는 행정적 편향, 성공한 다른 지역을 그저 모방하면 될 것이라는 착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인구 주의에서 탈피할 때 비로소 로컬의 미래를 제대로 논할 수 있다.

 

제민수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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