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박상훈_왜 정치가의 책임과 신념의 균형이 중요한가?

박상훈 |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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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혀 공부의 기초가 되지 않은 상태로 미국에 유학을 갔다. 그러다 보니 수업에서 다루는 온갖 정치학 이론들이 잘 이해되지도 않고 와닿지도 않았다. 유일한 위안은 힐링 타임에 보는 마피아 영화와 선출직들의 회고록이었다. 거기에는 악마에서 천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다양한 색조가 풍성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내가 미국 정치를 이해나는 가장 유용한 프리즘은 주로 이 수업 외의 경험이었다. 나는 한국에 귀국해서다시 한 번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내가 주로 직면한 흐름들은 정치제도에 대한 이론적 논쟁들이었다. 거기에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고민은 흔적이 잘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 한국 정치에 대한 가장 정교한 제도적 분석을 해온 박상훈 박사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제도 대신에 이 화두를 꺼냈다. 반전이었다. 이는 정치의 고유성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마음의 성찰을 강조하는 우리 반전의 고민과도 조응한다. 이 고민이 무척 약했던 나는 그간 정치의 악마성을 잘 다루지 못하고 무수히 실패해왔다. 특히 정치에 대한 착한 선의를 가진 이들은 악마를 만나기 전에 박상훈 박사를 먼저 만나야 한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일단 박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정치인의 신념과 책임에 대한 것이에요. 저는 반전의 커리큘럼을 만들 때부터 이 문제는 가장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평생 이 문제에 천착하셨으니까 누구보다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상훈 | 저는 오늘날 우리가 좋은 정치를 꿈꾸는 것이 하나의 도전이 되어버린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이 고민은 이제 정치학자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 된 거죠. 제가 하는 강의는 제도나 체계보다는 정치하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이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것들은 사실 어느 정도 구체화된 자료가 있고 서로 비교도 가능한데 인물이라고 하는 요소는 정말 너무나 가변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정치는 이론이 현실에서 힘을 잘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좀 더 인간으로서의 실존적인 고민이 많이 필요한 것 같고 그런 내용들을 수강생들과 나눠보고 싶어요.

   

안병진 | 지금 이야기는 굉장히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반전 수강생을 선발할 때 ‘나는 정치를 왜 하는가’에 대한 에세이를 받았는데요. 대부분 제도와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거든요. 사실 ‘나’를 빼고 그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관찰자적 시선에만 머물 수 있잖아요.

 

박상훈 | ‘나’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은 에토스와 연결이 되죠.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던진다고 해도 그게 이야기하는 당사자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힘이 실리지 않거든요. 그 개성적인 힘이 없다면 좋은 연설문은 그냥 좋은 글에 불과한 거죠. 팬덤 정치가 구조화되고 여론에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우리 사회에 그 개성적 힘이 특별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 사람의 인격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좀 보고 싶어요.

 

안병진 | 정치인의 인격과 인간적 고뇌에 대해 영원한 고전인 막스 베버의 글들에 대해서 깊게 공부하셨잖아요. 베버는 정치가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악마적 속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했던 학자잖아요. 그리고 그 악마적 힘과 긴장 사이에서 윤리적 고민을 해야 하는 정치인의 숙명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금 시대에 더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박상훈 | 막스 베버가 탁월했던 것은 좋은 뜻만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만약 좋은 뜻으로만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면 결국 악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악마를 통제하는 것은 좋은 뜻 이외에도 또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것이었어요. 정치인에게는 뜻을 의미하는 신념과 실천을 의미하는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하며 그것이 통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도 막스 베버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송주환 |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에 대해서 지금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을 조금 쉽게 표현한다면 신념윤리는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이데올로기’ 책임윤리는 그것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헤게모니’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박상훈 | 그렇죠. 이 윤리 사이에 정치인 ‘나’란 존재가 있는 거죠. 신념적으로는 추구하는 바만 따르고 책임을 등한하게 된다면 정치인이라고 이야기할 수없어요.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송주환 |. 그런데 막스 베버는 ‘민주주의 국가의 완성은 정치인이 다른 걸로 돈을 벌지 않고 정치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국가로서 존속 가능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이게 안 되잖아요. 이와 같은 환경에서 주도적으로 신념과 책임 사이에서 소명을 지키며정치인으로서의 ‘나’를 발전시키는 게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 아닌가요?

 

박상훈 | 사실 그게 본질이죠. 그래서 처음 민주주의가 발현되었을 때도 참여 자체에 비용을 지급했어요. 가난과 관계없이 민주주의에 참여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것이죠. 사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만큼 깨끗한 곳도 별로 없고요. 혹자들은 우리나라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는데 저는 그전에 정치하기 좋은 나라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병진 | 제가 속한 소위 586에 대해서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변호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요. 낙선이나 낙천 이후에는 거의 낭인이 되어버리는 그런 사례가매우 빈번하잖아요. 이것은 결과적으로 정치인의 부패와도 직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념과 책임 사이에 고민은 점점 더 옅어지는 것 같아요. 생존이 우선이 되니까요.

 

박상훈 | 저는 그것이 현재의 우리 정치가 나빠진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제도나 그와 연관된 다당제를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꽤 많은데…우리 사회와 미래에 어떤 정당이 필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 이야기는 선거제도의 변화를 추구하고 거기에 기대서 자신들의 가능성만 높이겠다는 의미 잖아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송주환 | 저는 그런 점에서 질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참여자의 욕망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사회적 정합성을 고려해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규칙이라는 것은 우선 현실 정합성이 있어야 하고 어겼을 때 상대도 나도 바로 알 수 있어야 하거든요. 국민 정서의 눈치를 보면서 여러 복잡한 예외를 둔 김영란법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보다 보니깐 정말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상훈 | 바로 그게 책임 윤리의 핵심이에요. 베버는 책임 윤리를 결과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라고 불렀어요. 결과를 지향하는 건 신념 윤리죠. 하지만 그 신념 만으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그와 별개로 책임 윤리가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는 악마적 속성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별다른 준비 없이 선한 신념 만으로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선한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그 인식이 정치인에게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Review

 

정치학자 박상훈의 강연은 민주정, 정치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산산조각낸다. 돈을 잘 다룰 줄 아는 지혜와 힘의 중요성. 권위는 필요 없다는 민주정에 대한 오해. 공익적 영웅심. 그리고 급진적 점진주의. 주로 제도 개혁 논의로 흐르기 쉬운 한국 정치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서 정치학자 박상훈은 ‘누가 정치를 하는가’를 묻고 그의 대답을 내놓는다. 결국 사람을 잘 길러내려면 다시 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탄탄한 유소년 리그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독일과 스페인의 축구 시스템처럼, 우리 정당에도 그러한 체계와 비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치학교 <반전>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상준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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