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김현미_성차별주의를 넘어선 공존과 확장적 연대는 가능한가?

김현미 |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Preview  

나는 지난주 수업에서 사랑과 존엄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넥스트 세대의 가치는 이론 이전에 새로운 사랑의 태도와 감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사랑의 정치학이자 삶의 태도로서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 벨 훅스라는 사상가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여성주의에 대한반전 세션을 기획할 때 새로운 삶의 가치와 태도에 대해 솔직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강사가 누구일지를 고심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김현미 교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의 저서 『페미니스트 라이프 스타일』에서 그와 같은 가치와 태도를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션이 공화주의자, 여성주의자로서의 삶의 양식을 함께 형성하고 발명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교수님 반전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시게 되었는데 어떤 방향으로 세션을 이끌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김현미 | 반전은 정치학교잖아요.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정치적 비전이나 논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는데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송주환 | 저는 교수님 쓴 책만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제목만 보고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목 자체가 우리의 모순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적인 속성을 가진 단어인데 이것을 성평등을 의미하는 페미니즘과 붙이니까 모순적이면서도 뭔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책에서는 ‘페미니즘은 신념이기 이전에 관점이고 태도이기도 하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확장을 전제로 한 페미니즘, 레버리지로의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를 가진 채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안병진 | 저도 그 단어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책을 이렇게 쭉 읽으면서 제가 좀 오만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나름대로는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제가알고 있는 부분이 굉장히 표피적인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또, 책에 나온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을 바라보는 부분에서도 저 자신에 대한 많은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송주환 | 저는 이 책을 보면서 페미니즘이 다른 가치들도 포용하는 더 큰 페미니즘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저는 좀 본거 같아요. 남성과 여성이 둘로 나뉘어 있으니까 자꾸 이것을 리트머스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기득권 세력이 그 갈등을 다른 목적을 숨기고 부추기고 있는 점도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김현미 | 젠더 갈등이 그런 요소들이 굉장히 많죠. 이대남, 이대녀 프레임은 전형적인 기득권의 발명품이에요. 저는 그 현상을 보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젠더 갈등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세대 갈등은 그 이전만큼 부각되고 있지 않거든요. 저는 마이너리티 느낌이라는 것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브먼트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지속적으로 부딪히고 난 과정에서 생기는 공통의 감정이기도 하고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어떤 느낌이기도 한것 같아요. 주디스 버틀러가 ‘퀴어의 정서는 조울이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기득권이 강력한 헤게모니를 가지고 그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보복을 하면 그 해당 대상은 정서적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어요. 그 결과가 조울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거죠. 함께 모여 주장을 할 때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이지만 개인으로 돌아가면 굉장한 두려움과 보복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고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또 사회의 변혁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게 지체되고 있기 때문에 그사이에 우울한 감정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고 난 후 사회 전반적으로이 감정이 지속적으로 증폭 중이라고 생각하고요. 심지어 이것이 기존에 단순하게 나눠졌던 남성, 여성 구도에서 확장되어서 20대 남성에까지 전염되고있는 상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병진 | 맞아요. 20대 남성들 일부가 현재 가지고 있는 그 강렬한 분노라는 것이 사실 오늘날 중요한 분석의 주제가 되었지요. 

 

김현미 | 저는 이것은 속칭 ‘이대남’으로 통칭되는 한국만의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글로벌한 트렌드라고 보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사회 안에서의 혐오와 차별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일어나기 마련이고요. 그게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사회의 여러 분야로 전염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도 여성들도우리가 막연하게 굉장히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회적 조건과 구조에 따라 보수화 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왜 청년 세대가 진보적이지 못할까?’라는 질문은 586세대가 그들이 겪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강력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는 적이 분명하고 이분법이 강력했던 시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능력이 굉장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역사에 기초한 복잡성을 잘 들여다 봐야 하고요. 또, 새로운 세대가 그들 만의 방법론을 찾아볼 수 있도록 우리가 연대하고 지지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주환 | 저는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화두가 맘에 들었어요.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관점이자 태도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함께 방법론을 찾아보자는 방향성이 마음에 들었고 어떻게 보면 새로운 패러다임과 헤게모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일종의 야망 같은 것이 느껴져서 좋았던 것 같아요.

 

김현미 | 저는 586세대의 관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여성과 또 20-30대들을 약간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 세대의 리더십은 리더리스 리더십, 리더가 없는 리더십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성세대가 크게 구별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 안의 개별적인 소비자로 커왔고 소셜 미디어에도 어릴 적부터 천착해 왔지만 동시에 지금 상황이 돌파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세대예요.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에 불을 붙여줄 캐치프레이즈와 정치 기획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일 수 있고요.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정치학교 반전 같은 교육 기관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Review

 

나는 그동안 페미니즘을 이분법에 질문하는 과정으로 많이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왜 안 돼?’가 많았고, 아마 대중화된 성공 페미니즘도 이 맥락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해체하고 기득권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 페미니즘 정치가 지향하는 방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기득권과 연결되어서 살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은 기존의 정치에 대한 반대항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질문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나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권력의 공유’ 중 가장 큰 것이 발언권의 공유라고 생각한다. 마이크를 가진 사람이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리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반전의 청년 정치인들은 권력의 관계적 공유를 보다 가까이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세션에서 전반적으로 유익했던 점은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가부장제와 페미니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청년 정치가 갖는 ‘기득권 반대’ 프레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권력의 속성을 ‘관계적 공유’라고 재정의한 것도 새로운 방식이었다. 뺏고 뺏기는 경쟁이 지겨운 사람으로서, 반가웠다. 다만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가현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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