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안병진_왜 모든 공인은 공화주의자이어야 하는가?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Preview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란 말은 들을 때마다 언제나 나의 가슴 속 어딘가를 건드린다. 이 단어들은 자유로운 삶, 인간의 존엄, 함께 살아감, 사랑과 우정 등 내가 좋아하는 화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강연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즐겁게 이 정치 철학적 화두를 꺼내곤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단어들을 강의실에서만 주로 꺼내게 되었다. 나도, 한국 사회도 이 화두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 왜일까? 거대한 담론에 이제 질려서? 정치철학이 그저 장식과 알리바이로 변질된 진영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우연히 정치학교 반전에서 이 화두를 강의하게 되었다. 오늘 사전 인터뷰는 어떻게 보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형식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인터뷰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가슴은 왜 이렇게 뛰는걸까?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Q. 나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세션을 만들고자 하는가?

 

A. 첫째, 이 세션이 청년들이 주도하는 넥스트 가치의 비전에 조금이나마 요리 재료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청년 정치의 반성과 미래’ 대담 세션이 무척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이후 구체적인 정책 이슈 이전에 본인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어떤가치를 추구하는가를 함께 탐색하는 물음이 멋지기 때문입니다. 대화 과정에서 자유와 같은 화두가 당적을 떠나 청년들의 공통 지반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소중한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저의 공화주의에 대한 정치철학 화두와도 이어집니다.

둘째, 저는 이 세션이 그저 정치철학에 대한 사회과학적 의미를 정리해 나가는 대학원 수업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 세션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화두만 해도 너무 역사와 개념이 복잡해서 각각 최소한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 3시간 세션은 오히려 머리에 혼란만 주다가 끝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애초부터 전 미션 임파서블의 과제를 가진 셈입니다. 굳이 이 세션에서 제가 하나라도 건지고자 하는 건 마음이라는 화두입니다. 이 정치철학 세션의 핵심은 논리적 사고와 개념 정리 이전에가슴에서 우러나는 마음과 태도의 영역입니다. 나는 오래전에 정약용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육자인 그는 올바른 심성을 가지지 않는 자에게는 교육하지 말라는 도발적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럴수록 더 교육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어떤 가치도 부질없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우울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화주의에 대한 많은 걸출한 이론적 책들 대신에 생뚱맞게도 우리의 마음과 태도에 대한 성찰적 에세이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사전 학습 자료로 추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이 세션이 작은 등대가 되길 희망합니다. 마치 등대처럼 수업 이후 각 이슈들을 다룰 때 이 정치철학 화두와 항상 연계시키셨으면 합니다. 사실 가치라는 범주는 우리 반전의 첫 세션에서 마지막 세션의 모든 이슈에서 다 연결됩니다. 그래서 조별 토론에서도 간단하게 가치와 이슈를 연결하는 감각에 대해 맛보기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단 주제는 제가 사전 제공이 아니라 현장에서 공개할 생각입니다.

 

Q. 그럼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A. 이는 학자마다 다른 접근법이 있어 좀 복잡합니다. 저의 접근법은 비롤리라는 공화주의 이론계의 거장의 시각을 일부 수용하는데 두가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공화주의는 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저수지라는 비유입니다. 즉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거대한 바다와 같은 포괄적 개념입니다. 고대 로마나 중세 서양, 그리고 조선에는 단지 자의적 통치자의 것이 아니라모든 시민(혹은 더 나아가 존재들)의 것으로서 공동체(라틴어 어원은 공공의 것: Les Publica), 인간의 존엄과 동등성, 이를 위해 강자의 이익을 견제하는 법적 장치와 견제와 균형, 민중 참여 등 다양한 개념을 포괄하는 사상적 흐름이 있습니다. 오늘날 서구 근대 사회가 본격화하면서 우리는 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더 익숙합니다. 즉 개인의 소유권 등을 보장하고 국가 등의 부당한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리 개념으로서 자유주의나 시민의 주권과 참여의 민주주의가 상식이 되었지요. 하지만 원래 바다와 같은 폭넓은 공화주의 사상은 오늘날 자유주의 민주주의 체제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를 학문적으로 표현할 때 ‘자유주의 헌정주의 민주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이 단어에는 굳이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개인의 권리(자유주의), 법적 지배(공화주의의 주요 개념 중 하나), 시민 통치(민주주의) 등이 다 포함된 의미를 가집니다.

 

Q. 우리 반전은 모든 강사들에게 반전의 화두를 묻곤 합니다. 소위 586 정치인들이나 혹은 본인은 지식인으로서 이 정치철학이란 측면에서 어떤 반전(반성과 비전)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A. 저와 같은 소위 민주화 시대 운동권들은 오늘날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한국은 보수는 ‘자유 민주주의’를 버렸고 진보는 이에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민주주의의 운동적 가치와 정신, 그리고이의 정교한 제도적 구축 과정에는 다들 너무나도 관심이 없었단 사실입니다. 전 정치를 운동으로써 사고하는 관성에 대한 비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운동적 관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적 관점을 가지면 부단한 성찰과 비전(반전)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생깁니다. 그래도 87년 이후 걸출한 정치인들에게는 그 가치 운동의 화두가 있었습니다.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자유와 공동체 가치를 치열하게 추구한 보수적 공화주의자였습니다. 민주당의 김근태 전 의원은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꾼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자였습니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6411번 버스 승객과 자유총연맹 구성원이 함께 존중받는 좌파의 애국적 공화주의자입니다. 녹색당 창당에 기여한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생태적 공화주의자입니다. 오늘날 이들의 가치와 정신을 새로이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공화주의 반전 클럽’이 본격 등장해야 합니다.  

 

Q. 청년들의 넥스트 가치로서 나는 왜 이 정치철학 세션을 특히 강조하는 건가?

 

A. 자유주의는 인간의 존엄을 적절하게 화두로 제기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 주권을 적절하게 화두로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유주의의 자유는 간섭의 배제라는 수동적 자유를 넘어 자유로운 잠재력의 능동적 자유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방종이나 타자에 대한 소유, 더 본질적으로는 인간 중심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와 소수, 다양한 존재(비인간까지포함)들이 어우러지는 자유의 공동체라는 화두가 결합되지 않으면 때로는 배제와 혐오의 정치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주의는 개인과 자유라는 화두를 잊은 채 유기체적 공동체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더 풍부한 바다와 같은 공화주의 사상의 발전이 넥스트 가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나의 자유와 타자의 자유가 연결되어 있음을 조금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통해 나의 안전과 지구 행성의 지속가능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조금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미·중 간의갈등을 통해 그간 타자의 정체성 존중에서 별로 성공해오지 못한 미국의 자유주의와 자유에 대한 화두가 결핍된 중국의 권위주의가 세상을 더 위험하게 몰아간다는 것도 조금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의 넥스트 가치는 이 자유의 의미를 국내와 국제관계 노선으로, 인간과 지구의 공존으로 풍부하게 만들어 가는 공화주의적 자유의 심화 여정이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건 공화주의란 곧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한 기쁜 발걸음이자 슬픔이고 분노이다’란 마음의 화두입니다. 이 디스토피아의 시대에 여전히 혁명적 사랑의 세 가지 교훈을 절실히 호소하는 ‘발레리 카우어’의 말로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기쁨은 사랑의 선물이다. 슬픔은 사랑의 대가이다. 분노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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