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최영기_이중노동시장 문제는 극복 가능한가?
최영기 |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Preview
나는 좋게 봐주면 유연하고 엄격하게 보면 귀가 너무 얇다. 그래서인지 진보와 보수 양쪽에 모두 친한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항상 퍼즐이 있다. 진보 진영의 노동 전문가와 세미나를 할 때마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현실은 한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 구조적 교착상태에서 선출직을 꿈꾸는 청년들 또한 입성하면 냉소주의자나 혹은 진영론자가 될 것 같아 사실 나는 두렵다. 그런 나로서는 비록 수십 년간 노동 문제현장에서 고투 해오신 거장인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설렘 보다는 답답함이 앞섰다. 하지만 정치학교 반전의 문을 열고들어오시는 최 전 원장님의 눈빛을 보고 난 직감적으로 그람시의 말이 떠올랐다. ‘지성의 비관과 의지의 낙관’. 인터뷰를 마치면서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한국 사회에 제기하신 사회적 대타협의 화두를 끝까지 놓지 않는 그는 오늘도 청년의 가슴을 가지고 반전을 꿈꾼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원장님, 노동문제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쉽게 풀리기에는 사실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잖아요. 전 이중노동시장 문제가 거의 교착 상태라는 비관주의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출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슈를 접할 때 단순한 해법과 진영을 넘어 역사적 맥락과 현주소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이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원장님이 이 세션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일까요?
최영기 |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고용 격차’라는 관점에서 지금의 노동 문제를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고용 격차는 단순히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는 아니고 남녀격차, 세대 격차까지 다 포괄한 개념이에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실 중립적인 표현이고 개별적인 상황에 따른 과도한 임금 근로 조건의 격차는 지금 노동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송주환 | 그런데 고용 격차가 있고 그 속에 다중구조가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이중구조라고 보통 표현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이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최영기 | 그렇죠. 특히 대기업 내의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로 우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서 보면 원청과 하청으로 대표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지고 젠더를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다시 나눠지고 세대를 둘러싼 연공주의로 또 나눠지는 거죠. 사실 요즘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연공주의가 굉장히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본인들은 훨씬 더 디지털화 되어 있고 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데 연공서열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의 자릿값이 너무 비싸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안병진 | 제가 수십 년간 노동전문가들에게 들은 관점이 연공주의는 한국에서 바뀌기 어렵다는 비관주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요즘 보면 밀레니얼 이후 세대 중심으로 직원들이 직접 주장해서 성과급을 제도화하는 기업들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영기 | 저도 이렇게 복잡한 노동 시장 안에서 몇 가지 바뀌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연공주의의 완화 내지는 해체라고 봅니다. 사실 이건 굉장히 큰 도전이고 만약 이것이 실제화된다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디지털 문화가 기업 경영에 대폭 적용되고 전문가들과 젊은 임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많이 표면화된 것 같아요.
안병진 | 네. 그런 추세가 존재한다면 그 상황에서 선출직이 해야 하는 고민은 무엇일까요?
최영기 | 가장 중요한 건 공공 부문에 연공주의 대안을 마련하는 거겠죠. 연공주의 방식이 반드시 대세나 미래가치는 아니구나. 이걸 대체할 노동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이런 걸 청년세대가 주도적으로 모색하고 토론했으면 합니다. 이는 청년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무기가 될 수있습니다.
송주환 | 그러면 이런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면 정부가 있고 노동자가 있고 그리고 기업이 있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가 있잖아요. 그러면 정부가 나서서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관계를 다시 재정의할 수는 없는 건가요? 예를 들면 기업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는 대신에 그 반대 급부로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국가는 나서서 직접 노동자의 복지를 해결해주는 방식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역할을 재분배하는, 그런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최영기 | 그렇죠. 그게 사실 안전망 문제인데. 그 안전망을 사회적 신뢰 속에서 정부가 충분히 강화를 해주고 기업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인력 운용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접근이 될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지금 정부가 가진 문제점이기도 해요. 사실상 현 메커니즘 안에서 정부의 역할이 없거든요. 안전망은 보험의 형식으로 운영되는데 대부분 노동자와 사용자가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정작 정부가 내는 돈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안병진 |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적으로 적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영기 |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결정하는 사람이 협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리인이 협상을 진행하다 보니 권한이 많지 않고 나중에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협상을 하다 보면 정부가 노동자를 설득하고 그러면 기업이 마지못해 동의하거나 정 불리할 것 같으면 나중에 가서 새로운 조건을 얹기도 하지요. 그러면 노동자는 결국 투쟁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안병진 | 말씀하신 큰 흐름은 이제 알겠습니다. 하나만 더 여쭤보면 저희 반전이라는 이름이 반성과 비전의 줄임말 이거든요. 반성에서 시작해서 비전으로나아가자는 이야기인데 원장님 입장에서 지난 역사 중에 가장 반성하고 성찰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영기 | 우리 전문가 집단이 너무 진영화가 되어버린 것이죠. 사실 제가 노태우 정부 때부터 이 문제를 가지고 활동을 했는데 그때는 ‘무엇이 옳은 것이냐’를 가지고 자신들의 신념을 토론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진영을 나눠서 활동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진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서로가 대화가 안되고 대화를 회피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이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Review
노동 현장에서 이동 경력경로 설계를 통한 대안 마련 방안을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이번 세션은 잘 정리된 교재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언제나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면 대가를 얻을 수 있도록 경로를 만들어 주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그리고 다수가 안전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 또한 국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노동 개혁의 방향은 첫 직장이 전부가 아닌 경력개발과 관리로 얼마든지 도약 가능하고 실패와 쉬어감의 기회가 있는, 이직의 자유가 있는 나라였으면 한다. 2023년이 되면서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변경되는 공단 내 업체들의 임금인상률, 거래처에서 단가를 인상해주지 않아 울상인 업체 사장님들, 일거리가 없어 당장 휴업을 실시하는 업체 직원들을만나 무급 동의를 받아들면서 여의도와 노동 현장의 괴리감을 느끼는, 사회진출의 출발선에서 도착점이 보이는 그런 사회, 노력해도 현실을 벗어나기 힘든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과정들과 새로 축적된 사례들에 대한설명을 들으면서 그래도 꾸준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었다.
김지나 | 정치학교 반전 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