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김원수_미·중 경쟁 시대의 대담한 구상이란 무엇인가?
김원수 | 전 UN 사무차장
Preview
요즘 들어 한국에서도 미·중 관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흔히 세계 동향 심층 보도에 인색한 미디어들도 아직은 멀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고있다. 그래서인지 미국 정치를 전공하는 나에게도 강연과 방송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지구적 현안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곤 한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김원수 전 유엔사무차장은 이 화두에 더할 나위 없는 적절한 강사이다. 그는 기후 변화 등에서 세계를 선도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보좌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현장에서 만들어간 공적 실천가이다. 그의 리얼한 현장 속 지혜 보따리를 일부라도 들으려면 사실 최소한 6개월은 필요하다. 다만 이 세션에서는 지구적 시각과 감각이 선출직에게 얼마나 절실한지의 필요성 정도라도 느낀다면 이미 성과는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6개월에 걸친 반전 세션들 초반부에 이 세계를 읽는 눈 속에서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것은 이후 국제이슈들을 다루는 몇 개의 세부 세션들의 필수 입구라는 생각이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원장님께서 미·중 관계에 대한 세션을 이끌어 주시는데 수강생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원수 | 미·중 관계의 변화가 사실은 세계의 변화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세계를 이해하는 힘과 능력, 그러니까 ‘Global Literacy’(편집자 주-세계 질서에 대한 문해력)가 필요한데 지금의 정치인들은 이게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병진 | 그렇게 된 이유가 뭘 까요?
김원수 |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일부 해외 동포들 조차도 만나보면 주로 한국 정치 이야기를 해요. 국내 정치에대한 과잉 관심이죠. 무관심도 문제지만 과잉 관심도 문제거든요. 우리의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를 절실하게 고민해야 하는 전환기에 국내 이슈에 매몰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느끼는 건 요즘 세대들을 보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UN에 있을 때 어느 나라를 가도 현장에 가보면 한국말로 인사하는 젊은이들이 꼭 있었어요. 심지어 아프리카 벽지에서도 그래요. 그런 점들은 참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안병진 | 저희 반전의 정신이 반성과 비전입니다. 그런 성찰적 경험과 사례들을 수업 시간에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원수 |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 사회 전반은 한계는 있어요.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 관료 사회에서 잘 나가려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제가 UN에 가서 보니 동북아는 세계의 작은 부분에 불과해요. UN의 이슈 중 70%는 중동, 아프리카의 분쟁들에 집중되어 있거든요.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관점을 가진 외교관이 되지 못하는 거죠. 우리는 외교에서 조차도 우리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안에서 맴돌다 보니 UN의 눈으로 볼 때 동북아 문제는 해당 지역 안에 묶여 있다고 평가받는 것 같아요.
송주환 | 전 MZ 세대와 그 이전 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동시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여러 가지 이슈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동시적으로 공유가 됩니다. 사실 X세대만 해도 나라 별로 그 세대가 발현한 시기가 다 다르고 문화도 조금씩 달랐는데 그 뒤의 세대들은 전 지구적으로 거의 비슷비슷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의 사회 안에는 새로운 세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는것 같아요. 서로 간의 인식 차이가 상당함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함께 살아가는 거죠. 그리고 그 매커니즘은 글로벌 이슈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아요. 당장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현실에서 그 해당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간에 연결성이 굉장히 미약한 상태인 것 같고특히 환경, 젠더, 인권, 난민 등의 이슈로 가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은 이 미약한 연결성을 복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못하고 있는 거죠.
김원수 | 그렇죠. 그런 인식의 차이가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선출직 정치인이라면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또 해결 방안에 대해서 강구를 해야 하는 것이죠.
안병진 | 말씀하신 문제 인식과 해결 방안에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일단 시야 자체가 협소한 것은 기본으로 봐야 할 것 같고 설령 그 식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세계 안에서 어떤 틈새를 만들어 가려고 그런 전략이나 전술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관념적으로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 일까요?
김원수 | 우리는 우리 주도로 역사를 바꾸지 못했다는 일종의 패배주의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장보고의 사례처럼 일본과 중국 그리고 실크로드를 능동적으로 연결했던 담대한 교류의 역사도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닫혔을 때보다 열리고 섞였을 때 그 잠재력이 발휘한 순간이훨씬 더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라도 열린 마음, 열린 생각으로 지구적 이슈를 세계적 관점에서 함께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병진 | 원장님은 요새 글로벌 정세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차가운 평화, 전략적 경쟁, 혹은 신냉전 등 다양한 시각들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김원수 | 저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는 그런 이론적인 논쟁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들이 별로 의미가 없어졌어요.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패권 경쟁을 시작했고 이것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 분명하죠. 그리고 더불어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대만도 있고 북한도있고 러시아도 있죠. 그 외에도 중동 문제도 연결될 수 있고 너무 많은 변수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요. 저는 솔직히 요즘에는 신냉전으로 진행되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입장이에요. 어쩌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열전이 올 수 있다고 보는 거죠. 미국과 중국이 지금 자신들의 레드라인을 긋고 그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지만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것을 넘어서게 될 수 있는 뇌관들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북한과 붙어있기 때문에 만약 북한이 이 뇌관을 건드린다면 우리 역시 바로 끌려들어 가게 되는 거죠.
안병진 | 마지막으로 수업 시간에 함께 토론했으면 하는 주제를 미리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김원수 | 지금 제일 뜨거운 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니까. 이 전쟁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를 함께 토론해 보는 건 어떨까요? 러시아가 이긴다. 우크라이나가 이긴다. 장기전으로 간다. 각자 이런 의견들 중 하나를 가지고 있겠죠? 그리고 대만 문제도 한번 다루면 좋을 것 같아요.
Review
평소 국제사회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솔직한 입장이다. 하지만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 관료 사회에서 잘 나가려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동, 아프리카 등 이슈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관점을 가진 외교관이 되지 못한다’라는 말씀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번 강의는 그동안 편협하게 갇혀 있던 나의 시각을 확장 시켜주는 강의였다. 세계 속 한국의 역할과 미래를 바라보며, 미래세대가 추구해야하는 정치적 태도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했다. 현재 정치는 양당 체제 속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이다. 이는 마치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속에서 양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태도는 정해진 답 없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한국 정치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를 정하지 말고 새로운 구조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양당 사이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당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당제를 통해 다양한 상황을 존중하고 그 과정에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결국 우리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영수 | 정치학교 반전 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