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홍성수_혐오의 시대에 존엄의 정치가 왜 중요한가?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Preview  

나는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베스트셀러가 된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을 때부터 언젠가는 홍성수 교수님 강연을 꼭 듣고 싶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정치학교 반전은 나에게 개인 인터뷰의 명분을 부여했다. 교수님의 숙명여대 연구실을 찾아 걸어가는 길은 그래서 행복했다. 마치 다시 신입생이 된 기분이랄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온 연구실을 가득 채운 혐오와 차별 주제 등의 인권에 대한 수많은 책들은 교수님의 공적 지식인으로서 치열한 고투를 웅변하는 듯했다. 오늘날 단지 분배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온몸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오늘날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나는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우선 홍 교수님이 이번 세션에서 다루고 싶은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여쭤보고 싶어요.   

 

홍성수 | 정치의 중요성이에요. 혐오나 차별 문제가 극단으로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보통 정치인들이 해당 논쟁에 가세를 하게 될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간혹 정치인이 중심을 잘 잡아서 잘 해결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런 사례를 볼 때마다 정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껴요.

 

안병진 | 제가 교수님의 책 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이 의외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존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본인이 이 혐오 문제를 연구하면서 기존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성찰적인 내용들이 저에게는 공감할 점이 많았습니다. 반성과 비전이라는저희 반전의 정신과도 일치되는 구절이라 무척 반갑기도 하고요. 

 

홍성수 | 사실 『말이 칼이 될 때』를 쓰게 된 계기도 원래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라는 곳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표현의 자유’가 워낙 위축되다 보니까그것을 알리는 형태의 보고서를 쓰게 되면서부터였는데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와 연동된 혐오 표현 문제를 접하면서 이게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송주환 | 사실 2018년도 나온 책이고 실질적으로는 2016년도에 진행하셨던 연구를 바탕으로 서술된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 뒤로 정말 많은 변화들이 있었잖아요.

 

홍성수 | 그렇죠. 사실 제가 책을 쓸 당시 혐오에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일베’에 관한 것이었어요. 대부분의 혐오 표현이 발생하는 공장이었죠. 그리고 그대상도 20-30대 남성에게 어느 정도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상대적으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있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일베의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졌고 당시 20-30대 남성에 국한되었던 세대 구분도 이제는 의미가 없게 되어버린 심각한 상황입니다. 

 

송주환 | ‘일베’라는 게 ‘일간 베스트 게시판’의 줄임말이잖아요. 디시인사이드에 워낙 글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인기 있었던 이전 글들을 다시 찾기가 어려워서 그것만 따로 모아서 보여주는 곳이었어요. 처음에는 혐오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본인이 더 높은 주목을 받기 위해서 혐오 표현을 경쟁적으로쓰면서 시작된 건데 나중에는 혐오의 장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변질의 메커니즘이나 맥락에 대해서도 충분히 토론할 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안병진 | 그래서 교수님이 책에서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물적 조건들과 그 사건의 맥락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죠? 그렇다면 거기에서 법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요?

 

홍성수 | 그것은 제가 제일 관심 있는 주제이기도 한데요. 한국은 일단 어떤 문제가 터지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만들어 무조건 처벌하는 식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심한데요. 거의 시스템화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법이 권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그만큼 사람들이 법을 잘 따라서 규제가 잘되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따라서 이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생기는 거죠. 법이라는 것은 사회 문제를해결하는 여러 가지 방법론 중 하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점들을 놓치고 있는 거죠. 법은 하나의 계기이고 진짜 변화는 그 이후에 일어나는 것인데법만 만들고 그 다음의 프로세스는 손 놓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송주환 | 저는 교수님 세션이 법철학적인 관점으로 진행이 되어도 되게 좋을 것 같아요. 하나의 법을 제정할 때 그것이 단순한 하나의 법령이 아니라 이 사회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법이라는 것이 만든다고 다가 아니고 실제로 적용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잖아요. 법 자체도 사회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안병진 | 반전 수강생들은 6개월간 같이 배우면서 함께 공통의 아젠다들을 만들 예정이거든요. 저는 단순하게 정치개혁의 아젠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교수님 말씀 듣고 나서 형성적 규제나 법의 사회화 같은 개념도 함께 고민하면 풍부한 아젠다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성수 | 그런데 이제 현대 정치에서는 포퓰리즘적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 보니 논리적으로는 이런 이야기에 수긍하시는데 나중에 보면 다시 형량 강화 쪽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물론 앞으로는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합니다.

 

안병진 | 그리고 교수님 책에서 제가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에 혐오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기본적으로는 혐오는 소수자를 대상으로 할 때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 기준이 때에 따라서는 굉장히 미묘하고 유동적일 수 있다는 말씀이었는데요.

 

홍성수 |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취약한 백인 남성에 대한 혐오 문제가 그래요. 사실 기본적인 인식으로 본다면 그동안 백인 남성은 혐오 대상에서제외되었거든요. 다수였고 취약성도 거의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소외되었던 백인 남성 계층의 존재를 사회 전면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이죠. 결국에는 그 역사성도 맥락도 함께 봐야 하는데 이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논란이나 갈등으로 비화되기가 쉽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루는 정치가 중요 해졌다는 말씀을 시작할 때 드린 것입니다.

 

안병진 |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수강생들이 미리 보고 올 수 있는 책을 추천하신다면요?

 

홍성수 | 제가 쓴 『말이 칼이 될 때』와 얼마 전 추천사를 쓴 『편향의 종말』도 좋을 것 같습니다.


Review

 

이번 강의에서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한 맥락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최근 고인이 되신 노옥희 교육감이 보여 준 난민 문제에 대한 정치의 역할과 효능감,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끈질긴 설득과 토론, 제도적 보완을 통한 실질적 조치까지 이끌어낸 현실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가슴이 뛰었다. 이 사례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강의 내내 차디찬 겨울 추위에도 이어진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의 출근 시위와 그들에게 쏟아지는 차별과 혐오. 그에 맞서 어느 곳에서도, 무엇으로도부터도 안전하지 않은, 목소리 없는 이들의 두려움을 떠올렸다.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치가 찬성과 반대라는, 편안하고 한가로운 이분법을 택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경종과 함께, 혐오의 시대에 존엄의 정치가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게 되는 귀한 강의였다.

 

문정은 | 정치학교 반전 1기

  

 
Previous
Previous

2강. 강원택_한국의 정치제도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Next
Next

4강. 김원수_미·중 경쟁 시대의 대담한 구상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