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박성원_무엇을 새롭게 상상할 것인가?

박성원 | 국회미래연구원 선임연구원


Preview  

우리는 춘천 오리엔테이션에서 각자의 인생그래프를 그리고 공유하는 매우 흥미로운 세션 을 가졌다. 각자의 그래프에는 고난의 행군, 그 속에서의 좌절과 비애, 하지만 슬픔의 승화, 나아가 불굴의 낙관 등 다양한 색조가 스며들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이 그래프를 그리면서 지나온 삶과 다가올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마침 우리 반전의 6개월 간의 첫 여정을 박성원 박사와 함께 대전환의 인생 그래프로 시작하게 되었다. 기묘한 우연일까? 아니면 반성과 비전이라는 우리의 소명이 어쩌면 운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박성원 박사는 세계 미래학의 대부인 짐 데이터 박사의 수제자이다. 수많은 현장에서 다양한 세대와 함께 성찰과 미래 화두를 탐구해 온 실천적 지식인 이기도 하다. 그와의 멋진 여정에 우리 모두를 초대한다.


 
안병진 | 정치학교 반전 커리큘럼 위원장


Interview

 

안병진 | 6개월간의 정치학교 반전의 긴 여정을 오픈하는 첫 세션이라 그 의미가 상당한데요. 우선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끌고 나가고 싶으신 지 궁금해요.

 

박성원 | 미래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저도 계속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미리 주신 질문지를 보고 예전에 안교수님이 저에게 추천해 주셨던 웅거의 책 『주체의 각성』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정치는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운명론에 거부한다. 저는 그것이 핵심 메시지 같아요. 사실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때 이미 좀 결정되어 있는 것 같고 바꾸기 어려운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틀 안에서 아등바등 생존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만 같은 막연한 느낌. 그 운명론에 대한 거부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안병진 | 제가 요즘 청년들에게 받은 인상을 조금 일반화해서 표현하자면, 우리 세대보다 미래가 더 불안하고 안 보여서 그런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야한다는 큰 방향성보다는 지금 당장의 이해관계나 금방 효과가 나는 현실적인 조건들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박성원 | 사실 산업화 세대는 그들의 부모가 전쟁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고 워낙 환경이 바닥이어서 뭘 해도 상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이에요. 뭐든 하면 전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안교수님이 위치한 586세대는 낙관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바꿔본 사회적 경험도 있고. 그런데 MZ세대들, 청년세대는 사회가 너무 촘촘해서 이게 웬만해서는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인식하는것 같아요. 거기다 미디어에서도 기후 위기다 해서 전부 부정적 전망 일색이죠. 그리고 사회 변화에 참여한 경험도 그전 세대보다 덜하고 그냥 현실을 잘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앞으로 크게 바뀌는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꿈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전 세대보다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안병진 | 왜 그럴까요? 청년 세대들이 물려받은 구조적 어려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대를 떠나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일까요?

 

송주환 | 지금 세대에게 현재의 구조적 문제들의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아요.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상대를 만난 거죠. 제가 평소에 무력감을 느끼는 단어가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자본, 자아, 젠더’예요. 이 세 개념 앞에는 웬만한 성자가 아니면 다 무너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박성원 | 자본하고 젠더는 알겠는데 자아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거죠?

 

송주환 | ‘자아’는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개인 브랜딩이죠. 소셜미디어 시대에 이것은 무엇보다 강력하고 대부분의 가치를 굴복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의 구조적 모순도 심한 상황에서 ‘자본, 자아, 젠더’의 삼중 어택은 지금 세대에게는 강력한 도전이 되는 것 같아요. 이전 세대들은 이 부분을 갈라치기해서 그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안병진 | 지금 나온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강의 시작부에서는 미래학에 대한 정의와 지금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강생들이 이 수업이 끝난 후에 어떤 점을 얻어 갔으면 하시나요?

 

박성원 | 일단 의사결정을 그 전보다 좀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수많은 의사결정을 할 분들이니까요. 의사결정을 잘하는 CEO들의 특징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불확실성을 인정해요. 두 번째는 믿음에 반하는 증거도 적극적으로 탐색해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대안을 함께 제시해요. 그리고 사실 어느 조직에 가도 이런 예측을 방해하는 악당들이 있거든요. 평균 만을 강조하거나 과거부터 이어진 추세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거나 데이터 자체에 너무 의존한다든가 하는 그런 사고 방식들이요. 이러면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예측을 하는 데 한계가 생기거든요. 중장기적으로 미래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이었으면 좋겠고 나아가서 여기를 졸업하는 수강생들은 적어도 비전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안 밀렸으면 좋겠어요. 비전이라는 게 사실은 목적지를 구성하는 힘이거든요.

 

송주환 | 저는 586세대와 이후 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우리’와 ‘나’에 대한 관계인 것 같아요. 586은 ‘우리가 있어야 내가 있다’이지만 X세대, Y세대, Z세대는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가 그냥 당연한 기본 값이거든요. 우리를 위해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586과는 간극이 분명히 있어요. 그것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세계관의 차이이기도 하고요. 이건 공감의 정치가 필수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할 때도 이러한 세계관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아요.

 

박성원 | 이것도 아주 핵심적인 말씀인데 교육학자 존 듀이는 그레이트 소사이어티가 아니라 그레이트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차이점의 핵심은 커뮤니티는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공동체라는 거죠. 내가 성장하면 그 과실을 공동체가 받아서 다른 개인들을 키우는데 활용할 수 있는 집단인 것이지요.

 

안병진 | 마지막으로 수업 전에 수강생이 미리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을까요?

 

박성원 | 제가 쓴 『미래 공부』를 보고 오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앨빈 토플러의 『미래 쇼크』도요. 고전이지만 여전히 좋은 작품이에요.


Review

 

미래학의 이와 같은 성격을 고려하면 정치 및 정치인에게 미래학은 너무나도 필수적인 학문이 아닐 수 없다. 사회 변화에 있어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것이 정치이고 그것을 현실화 시키고자 하는 당사자가 바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비전이 있는 미래를 그리고 만들어 가야 하는정치가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불행한 비가역적 미래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미래학은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미래의 비전을 현실화 시킨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와 미래학이 너무나도 상호 보완적이며 상통하는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속에 미래학이 아직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미래를 쉽게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래학의 성격과 의의, 그 가치를 잘 담고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우리 정치학교 반전의학생들에게는 너무나 필수적이고 소중한 강의였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라는 말처럼,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선물과도 같은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와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비전을 그리고 그러한 비전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 그 미래는 어느새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닌 그 미래 말이다.

 

안희철 | 정치학교 반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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